신발 속 한알의 모래로 인한 불편함이 있다. 태풍·지진과 같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재앙에 비할 바는 못 되는, 신발 한번 탈탈 털어내면 되는 문제라지만 그 한알로 인한 불편함 또는 불쾌함을 안고 살고 싶은 이는 없다.

거대담론으로 인한 이슈가 수면 위로 불거질 때 부작용 중 하나는, 한알 모래알 문제로 인한 불편함이 과소평가 되는 데 있다. 과거 사법부의 사법농단으로 인한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었던 이슈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와 관련한 문제다. 법 조항이 실제 사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법원이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떤 논의를 거쳐 얼마나 공정하게 판결을 내렸는지 정리된 자료가 판결문이다. 내년 1월부터 대법원이 민·형사 재판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고 사건 검색 편의성도 높이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그 이용 범위는 ‘법원도서관’으로 제한돼 있다.

한 변호사는 “제주도 주민이 판결문을 검색하러 서울까지 와야만 한다. 그나마도 제한된 검색대 중 한대를 차지하기 위해 예약도 해야 한다”며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에 왜 국민이 법원에 가서야 판결문을 검색하고 그 판결문을 받는 데 돈을 내야 하나. 판결문은 국민 모두의 자산이다”라고 했다.

법률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정보 격차에 의한 비효율성’이 꼽힌다.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는 정보 격차를 대폭 줄여 시장 비효율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사법신뢰 제고를 위해 대법원이 단행한 일련의 조치에서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법정 내에서의 ‘판사 전횡’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도 문제다. 올 여름 ‘불량판사’라는 제호하에 기획기사를 준비할 때 일이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도 판사들이 졸거나 건성으로 변론을 진행하고 일방적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이 다수 눈에 띄었다. 어이 없는 판결로 당사자들을 좌절케 하는 사례들은 그밖에도 종종 보도되곤 한다.

법관만 그러할까. 자질이 부족한 법원 내 각종 전문위원들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이혼 관련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선 이혼 판결 이전 필수 절차인 조정에서, 가사조정위원으로부터 받은 폭언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이혼이라는 인생 중대사를 결정하러 온 이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가한다는 지적이다.

사법농단 의혹을 척결하는 것만큼, 일상 속 불편함을 없애는 것도 사법부에 신뢰를 높이는 또 다른 방안이 될 수 있다. 법원을 이용하는 국민들이 신발 속 모래알을 털어내는 시원함을 느끼는 날은 언제나 돼야 찾아올까.

 

 

/황국상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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