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이 시작되었다.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고, 대법원이 최근 ‘성인지 감수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시도 하였기 때문에 이번 2심 재판의 결과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법리적 쟁점 뿐만 아니라 여론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는 없어 재판부로서는 쉽지 않은 판단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이 유무죄가 다퉈지는 형사사건에서는 법조계도 그렇고 여론도 그렇고 항상 1심에서는 뭐라 판단했는데 2심은 과연 어떻게 판단할지, 그리고 2심에서는 어떻게 판단했는데 최종 상고심에서는 어떻게 판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는 식의 논의가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결국은 상급심의 최종 판단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하급심의 판단은 상급심과 저촉되는 범위에서 무의미한 결론으로 귀결된다.

상급심 법관을 더 신뢰하고 그에 맞는 우월적 판단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 내에서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하급심 재판을 왜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생각해 보면 일반인이 아닌 전문 법관마저도 무죄라고 판단하였다면 비록 하급심 판결이라도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급심의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이 제한 없이 상소를 제기할 수 있고 실제 대부분의 사건에서 상소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하급심의 무죄판결은 그냥 하나의 형식적 과정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무죄 판결 선고에 찬성한 하급심 법관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보다 권위 있는 상급심의 소수 법관의 유죄 판결에 따라 피고인이 유죄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만 한 것인가? 죄형법정주의라는 것은 일반 국민의 보편적인 법감정에 기초하여 유무죄를 판단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수의 상급심 법관보다 다수의 하급심 법관의 판단이 더 존중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렇다고 하여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이 명확히 떠오르지는 않고, 답답한 마음에 각 심급별 판단에 차등 점수를 부여하여 최종 유무죄 결정을 하는 것 정도를 떠올려 보곤 한다.

이러한 문제를 주위에 말씀드리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법적 내공 부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경찰 및 검찰이라는 최고의 공권력 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다음 법관과 같은 자격을 갖춘 검찰의 판단에 따라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은 결과 법률 전문가인 법관으로부터 받은 최종 무죄 판결이 상소로 인해 의미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강명수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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