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경 대한변협신문 개편으로 ‘여풍당당 여변’ 코너의 첫 칼럼 기고자가 된 후 어느덧 내게 배정된 마지막 회차 기고를 하게 되었다.

첫 칼럼을 쓸 당시 어쩌다보니 기고를 약속은 하였는데 막상 의뢰받은 글이 새로 생긴 ‘여풍당당 여변’ 코너의 첫 칼럼이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담당 주임님께서는 ‘부담 없이’ 여성변호사로 일하며 겪는 고충이나 변호사로 일하며 겪은 일에 관해서 작성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칼럼명 자체가 ‘여풍당당 여변’이 아니던가. 게다가 첫 주자라니. 아무리 부담이 없으려 해도 ‘여성 변호사’라는 주제의식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여풍당당’이라는 문구는 여성변호사이기 때문에 겪는 특별한 고충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당당하게 잘 극복한 경험담이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여성 변호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싶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직업 정체성을 인식함에 있어 단순히 ‘변호사’라고 생각할 뿐 특별히 ‘여성’ 변호사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물론 업무를 하며 여자변호사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고 그에 부응하는 측면 또한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변호사로 일하며 겪는 일이 다 비슷하지, 여성변호사라고 해서 유달리 고충이 있을 건 또 무엇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기고해야 했기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멋쩍은 글을 적긴 했지만, 여전히 나의 직업 앞에 구태여 성별을 덧붙여 구별하는 ‘여변’이라는 호칭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직업을 배제하고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부당한 일들은 굳이 ‘미투운동’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82년생 김지영’ ‘페미니즘 논쟁’ 등에서 이야기 되는 것처럼 너무도 많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최한 전문직여성의 성희롱·성폭력 실태 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우리 사회 내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전문직이라고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인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직업을 막론하고 ‘여성’에 대해 가해지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결국 여성을 남성과 구별되는 대립적 존재로 보고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남성에 비해 여성을 상대적으로 약하고 감정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것인데, 이 대목에서 나는 ‘여변’이라는 호칭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어째서 우리는 ‘여변’으로 구분 지어져야 하는 것인지. 그냥 변호사일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굳이 여자라서 더 당당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대한변협 홍보팀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라건대 언젠가는 ‘여변’으로 구분지어 지는 일도,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강단 있게 행동하거나 당당해져야 하는 일도 없는 때가 오기를, 그래서 구태여 여풍당당 여변을 외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최주희 변호사·대구회(변호사최주희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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