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상품을 사고 파는 자본시장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기업의 재무제표는 투자대상 기업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는 다양한 수단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하다. 재무제표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많은 기업들은 그간 국내의 공적 기구가 마련한 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해 왔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국경이 무너져 투자가 글로벌화 되면서 국제적으로 단일·통합된 회계처리기준의 등장을 기대했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해 출현한 것이 바로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이다.

IFRS는 회계에 관한 세계 공통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주된 이념으로 런던에 설립된 비영리·민간 국제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각국 회계기준을 검토한 끝에 제정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외부감사법에 의거하여 IFRS를 한국어로 번역해 상장회사 및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 등에 적용하고 있다.

IFRS는 각종 회계처리에 관련된 나열식 규칙이나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원칙과 근거만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이 규정중심주의기준에 따라 회계처리를 하던 기존의 입장을 버리고 원칙중심기준인 IFRS를 전폭적으로 일시에 수용한 것을 두고 회계기준의 빅뱅(Big Bang)이 일어난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칙중심주의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수범자인 기업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감리당국의 태도도 전향적으로 변경되어야 하는 까다로운 전제가 가로놓여 있다.

세계 최대의 강국인 미국은 회계기준의 빅뱅에서 벗어나 있다. 미국은 상당한 기간 동안 IFRS를 도입할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도입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미국은 내용이 불분명한 IFRS를 도입하면 기업은 기업대로 이를 준수하기 곤란하고 행정당국은 당국대로 기업의 기준위반에 대해 제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를 예상한 결과다. 일본도 IFRS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국내 최대 재벌에 속하는 어느 기업이 상장을 위해 고의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잡고 검찰에 고발한 것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분식회계 판정에 대하여 찬성하는 입장도 있는 반면에 내용이 불명확한 회계처리기준을 시행하면서 그 불명확성으로 인한 비효율을 수범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와서 이미 도입한 IFRS를 폐기하고 규정중심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기존의 규정중심기준적 사고와 실무관행을 타파할 것을 감리당국에 주문하고자 한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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