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진행해왔던 민사 사건의 변론종결일이었다. 변론 과정에서 양측 모두 증인신문과 구석명신청, 사실조회만 수차례였고, 계속된 변론기일에 관할법원의 봄, 여름, 가을, 이제 겨울을 앞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에 변론이 종결되었다. 통상의 변론종결일처럼 재판장님께서는 “원·피고 양측 다 추가로 소명하거나 제출할 자료 없으신지요?”라고 물으셨고, 양측 모두 “없다”는 대답과 함께 판결을 몇월 며칠 몇시에 선고하겠다는 선고기일 지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재판장님의 대답은 내 예상과 전혀 빗나가는 것이었다. 재판장님께서 변론을 종결하며 “지금까지 양측 변호사님 두분 다 너무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재판부에서 제출하신 서면들 모두 꼼꼼히 살펴보고 판결을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재판과정을 스포츠 경기에 빗대어 표현해보자면 변론기일에 원·피고 측 모두 서면으로 공방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친 다음, 판결선고일에 재판부로부터 심사평을 받게 되는 것인데, 그날 재판부에서는 변론을 종결하면서 그 동안 최선을 다해 경기해 준 양측 모두에게 수고가 많았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건넨 것이다.

법정에서 재판장님께 “그 동안 참 수고가 많으셨다”라는 말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었고 이 말 한마디에 지금까지 사건을 위해 애써왔던 노고가 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 따뜻함을 경험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듣는 상대방에게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했으면 한번 내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를 떠돌다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온다는 말도 있을까.

변호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많은 말들을 주고받는다. 과연 나는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고 격려를 주는 따뜻한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하는 차가운 말들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이순희 변호사·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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