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공익소송 등에서의 소송 비용 부담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심포지엄 개최
“깜깜이 개정으로 시작된 원칙, 민사소송법에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 도입해야”

상대방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 비용 부담,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원고가 공익소송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다. 법조계가 이처럼 소권을 제한받는 현 상황에 반기를 들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는 지난 21일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공익소송 등에서의 소송 비용 부담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공익소송에까지 패소자부담주의를 적용함으로써 피해자들이 겪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패소자가 부담해야 하는 소송 비용은 당사자가 국고에 납입하는 재판 비용과 변호사 보수 등을 포함한 당사자 비용이다.

김현 협회장은 “패소자부담주의는 무분별한 소송제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공익소송 등에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공익소송에서 패소하면 소송 비용을 떠안게 되기 때문에 항소를 포기하는 등 공익소송 시도 자체가 제한되기도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소송 후 청구된 소송 비용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피해 사례는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이다. 사건 피해 장애인들은 국가와 신안군, 완도군에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해 신안군청이 지출한 변호사수임료 등 약 697만2000원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또 지하철 역 사고 후 뒤늦은 수술로 사지마비 등 후유증을 갖게 된 김모씨는 패소 후 1억원 가량을 부담하게 될 상황에 처해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박호균 변호사(변협 인권위원회 위원)는 “남소 폐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에도 일률적으로 패소자부담원칙을 강제하고 있다”면서 “패소 당사자가 사실상 재판청구권 행사에 대한 과도한 제재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구 단국대 법학과 교수도 “인권 관련 소송, 소비자 보호 소송, 환경 보호 소송 등 공익소송이나 의료소송과 같이 입증 부담이 큰 영역은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이런 소송에서도 패소자부담주의로 일관하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송을 주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주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팀장도 “공익소송 원고 대부분이 사회경제적으로 소송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면서 “공익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무료 또는 소액으로 사건을 수임해도 피고 측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거액의 패소 비용을 원고가 온전히 감당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개선을 위해서는 민사소송법에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를 도입하는 방안이 나왔다. 소송 비용 패소자부담원칙을 유지하되, 변호사 보수에 한해 각자부담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에는 변호사 보수 역시 패소자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많은 나라가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변호사 비용 각자부담원칙을 택하고 있으나 제정법(statutes)과 보통법(common law)에 의해 예외가 허용된다. 제소가 악의적인 경우, 소권 남용인 경우, 무모하거나 부당한 사유로 제기되는 경우에는 패소자에게 승소자가 지불한 변호사 보수를 부담케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패소자가 재판비용은 부담하지만, 변호사 비용은 부담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까지는 변호사 보수에 대해 각자부담원칙을 적용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재판청구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소 폐해를 지적하는 건 비논리적이며, 군사정권이나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한 논리”라면서 “오늘날처럼 일반 소비자, 국민, 시민단체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시기에 ‘깜깜이 개정’으로 패소자부담주의를 도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령 개정 전에도 판례 통한 기준 마련되길”

대법원 규칙 개정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송상교 변호사는 “공익 원칙에 기초한 몇 가지 소송 유형에는 소송 비용 부담 원칙을 달리 하도록 대법원 규칙 등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법령 개정 이전에도 법관이 이 사안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판례를 통해 기준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희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은 “소송 비용 분담 예외 사항을 법원에서 개별적 사안을 판단해 결정토록 하는 방안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 도입을 공익소송에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됐다.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해서다.

송상교 변호사는 “특히 제도 개선이 시급한 소송은 정보공개청구 소송”이라면서 “정보공개법에서 국민의 알 권리 보호 차원에서 국민 누구나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면서도 과도한 소가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정보비공개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은 소가가 일률적으로 5000만원으로 책정돼 있어 1심 기준 변호사 보수가 최소 310만원 정도 발생한다”면서 “소가 기준을 대폭 조정하고 패소하더라도 소송 비용을 면제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소송의 경우 상대방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보 비대칭성 등으로 인해 입증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서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패소하면 파산하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법원에서 일부 승소를 하더라도 승소 비율에 따라 소송 비용을 부담하게 됨으로써 일부 승소한 금액 대부분을 상대방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 비용으로 지불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소송 비용 담보 제공 명령 제도 역시 문제로 꼽혔다. 조장곤 변호사(변협 인권위원회 위원상단 사진)는 “간략한 내용으로 제출될 수 있는 소장만으로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로 판단해 3심까지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 제공을 명하는 건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처사”라면서 “항의적 성격을 지닌 공익소송 등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가 넓게 인정되면 제소 자체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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