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를 들자면 바로 배우 이성민과 곽시양 등이 출연한 ‘목격자’다.

소시민인 상훈(이성민 분)이 우연히 아파트 앞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지만, 연쇄살인범 태호(곽시양 분)로부터 해코지 당할까봐 끝끝내 함구하려고 한다는 것이 전반부의 주된 내용이다. 경찰이 나서서 현장을 조사하지만 상훈은 입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 아파트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봐 집집마다 경찰에 절대 협조하지 말라는 공문까지 돌리고 서명을 받는 행태까지 보인다.

이 영화는 1964년 미국 뉴욕의 근교인 큐 가든스에서 발생한 캐서린 제노비스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뉴욕 타임즈는 제노비스 살인현장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증언을 하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그 누구도 아는 체 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비꼰 바 있다.

안타깝게도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영화 ‘목격자’의 상훈이나 제노비스 살인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여러 방관자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주주가 경영진의 행동에 대하여 충실하게 감시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감시에 드는 비용이 그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에 소극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주주가 다수인만큼 ‘내가 하지 않더라도 남이 할 것이니까’라는 생각을 모두 하다보면 경영진의 위법한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실 회사법학계에서는 경영진의 위법한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한때는 적대적 M&A가 이사의 의무위반행위를 억제하는 주요한 장치라고 믿어 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적대적 M&A가 발생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기가 어렵다. 각국에서 적대적 M&A에 대한 다양한 방어수단을 허용한 것도 적대적 M&A의 발생빈도를 줄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여러 국가들은 적대적 M&A에 보내는 신뢰를 줄이는 한편 그 대안으로 주주로 하여금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 등이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하는 주주권행사 강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규모면에서 세계 3위인 국민연금이 금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참여를 공식화하였고, 다른 기관투자자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기관투자자의 주된 관심은 ‘투자’다. 하지만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상회사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개입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다 보니 기관투자자가 대상회사의 경영진 견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여러 의결권행사자문사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자문비용은 업계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는 데 깊숙하게 관여한 기업지배구조원이 의결권자문사로서의 노릇도 함께 하는 것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는 어렵다. 기업지배구조원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확대하여 시행하면 할수록 의안분석 기관으로서 역할이 늘어나는 기이한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업지배구조원은 코드 제·개정 기능과 의결권자문기능 중에 어느 하나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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