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통치구조는 삼권분립을 취하고 있다. 삼권분립이란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각각 별개의 기관에 권한을 분담시켜 상호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시킴으로써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통치조직원리를 말한다. 이러한 삼권분립의 원리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사법부 수장이었던 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행정부 수반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재판거래를 함으로써 삼권분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재판거래의 외견상 명분을 외교적 마찰을 고려한 재판지연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외교부장관, 대법관 간 2013년 12월 1차 비밀회동과 2014년 10월 2차 비밀회동이 이루어진 것이 의혹이 아닌 사실로 밝혀졌다. 이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일본기업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건(2013다67587)임에도 이례적으로 5년 동안이나 재판지연이 이루어졌다. 단순한 재판지연이 아니라 재판거래가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재판이 지연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당연히 고령의 원고들이었음을 비추어 보면, 재판지연이 곧 원고의 사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대법원도 예견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원고 중 1명만이 현재 생존하고 있는 처참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는 2011년 8월 3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에 관한 해석상 분쟁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취지에 의할 때,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사건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결했어야 함에도 고령의 원고들을 한 맺힌 죽음으로 내몰았다. 적어도 ‘한 맺힌’ 죽음에 대해서는 양승태 대법원에 책임이 있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사법부가 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이유로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아니라 외국의 사법부의 노릇을 한 것이다. 헌법 제27조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규정하고 있다. 신속이라는 개념이 상대적인 개념이라 하더라도 원고들이 고령인 경우 신속한 재판이 더욱 시급하다는 점은 상식적이다.

한 언론사 칼럼에서는 사법농단 사건을 가지고 대법원이 실리를 고려한 것이라고 보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연장선으로 ‘외교에 있어 한 목소리의 원칙’으로 옹호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외교도 대한민국 헌법 아래에 있는 것이며,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외교에 있어 한 목소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 않고, 규정된 적도 없다. 오히려 외교 또한 행정에 일환으로 취급하여 삼권분립에 충실하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일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는 국민들보다 일본국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되기를 원하는 국민이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목소리의 원칙’에서의 ‘목소리’ 선정부터 잘못되었다.

사법부는 법대로 판결을 하면 된다. 사법부가 외교적 마찰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법부가 아니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하는 것이지, ‘법과 외교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외교에 있어 한 목소리 원칙’을 사법부에도 적용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내용이 왜곡·굴절된다면, 이는 이미 양심이 아니다”라고 결정한 바 있다. 대법원이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절충적으로 재판지연을 한 것으로 보더라도 이미 양승태 대법원의 양심은 왜곡·굴절되었다.

1945년 제헌헌법 전문에는 ‘동포애’를 규정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해외로 강제징용된 100만명이 넘는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규정이라 생각한다. 수차례 헌법이 개정되어 현행 헌법까지 오면서 헌법전문에 규정된 ‘동포애’는 한번도 삭제된 적이 없다. 이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지연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대한민국이 외면하였다는 애통한 생각이 든다.

이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를 보면서 일부 출세지향적인 판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게 되었다. 참고로 제1대 초대 대법원장이셨던 김병로 선생님은 퇴임사에서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제15대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태를 일으켰다.

누구나 법조인을 시작하면서 부푼 꿈과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였을 것이다. 멋진 법조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초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로스쿨 졸업을 앞둔 입장에서 스스로를 바로 잡게 된다.

 

/김현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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