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기밀자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연거푸 기각해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증거인멸을 사실상 도운 영장전담판사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장을 기각한다는 의미로 ‘프로기각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유 전 연구관은 증거인멸을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까지 검찰에 제출한 후 자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가위와 드라이버를 사용해 물리적으로 파쇄했다. 전직 판사가 형사사법절차를 농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된 후 영장전담판사들은 ‘신박’한 사유를 들어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뭉갰다.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이요, 강제징용 재판 등 재판의 독립이 침해된 증거가 상당부분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압수수색할 경우 재판의 본질적인 침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의 검토문건이 재판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희망사항도 기각사유로 나왔다.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인돼 압수수색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황당한 논리도 등장했다. 영장전담판사의 직업적·객관적 양심을 존중하고 싶지만 국민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행정처의 해명도 황당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공보관실 운영비로 책정된 3억5000만원 중 2억 8000만원을 각급 법원에서 현금으로 받아 법원장에게 2400만원부터 1200만원까지 봉투에 넣어 지급해 유용했다는 의혹이 일자, 행정처는 “예산경위와 집행절차를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수사 초기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 되는 등 증거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검찰은, 잇따른 영장기각으로 ‘사법농단’의 핵심증거들을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수많은 증거가 사라졌다.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법원이 ‘신 사법농단’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일 및 법원의 날인 13일에도 사법농단 수사에 비협조적인 법원을 규탄하는 시민단체의 집회가 이어졌다.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수사에 적극 협조”를 약속했지만, 법원은 또다시 압수수색영장을 무더기로 기각했다. 국민들은 자정능력을 상실한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사법농단 특별법’의 통과가 절실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달 15일 압수·수색·검증·체포 및 구속에서의 특별영장전담법관의 임명 등을 포함하는 ‘사법농단 특별절차법’을 발의했다. 쓰러져 가는 사법부에 국회는 신속히 ‘특별법’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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