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은 처음 읽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이다. 종종 서점을 지나칠 때 앞에 놓인 분홍색의 얌전한 표지를 보면 궁금하다가도 간지러워서, 연애소설은 내키지 않는 척 지나친 것이 두 달. 지금 생각해보면 제목 때문에 집어들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일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준비가 필요할 터.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혹시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이 책을 일단 열어 보기를 부탁하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 마음이 바로 경애의 마음이다. 잊고 싶기도 그렇지 않고 싶기도 한 기억들. 비단 사랑만이 아니라, 상실과 무기력함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그 모든 마음에 대해서 이 소설은 꼼꼼하게 풀어내려 간다.

경애는 회사 노조에서 삭발식을 할 정도로 부당함에 대해 맞섰지만 결국 회사로 복귀해 냉대 속에서 창고 곁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경애는 언젠가 연애를 할 거라고 여겼던 남자애가 화재로 인해 죽고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었다. 경애는 오랫동안 사귄 선배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얼굴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메일을 쓰며 고통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보낸 경애의 오늘은 소설에서 상수라는 새로운 팀장과 함께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 아버지가 오래 전 국회의원이라 회사에서 잘리지도, 승진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낙하산 팀장. 상수의 형은 문제아였고, 상수 본인도 4수를 했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는 일본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경애가 처음 좋아한 남자애는 상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경애가 버림받은 마음을 쏟아낸 메일의 수신인은 인터넷에서 ‘언니’인 척하는 상수였다. 두 사람의 스치듯 지나친 과거와 비밀은, 얼렁뚱땅 한 팀이 되어버린 현재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꽤 괜찮은 톱니처럼 맞물려 굴러간다.

상수와 경애가 연애를 하는 것인지, 혹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그리 큰 쟁점이 아니다. 다만 그들 각자의 과거와 그를 겪는 ‘마음’이 어땠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잠깐 전화를 하러 간 사이 불이 난 지하 가게에서, 돈을 못 받을까 문을 잠그고 탈출한 주인 때문에 아이들 모두가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경애의 마음. 노조에서 있었던 성추행을 고발하는 바람에 와해된 시위에서 돌아와, 회사와 노조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애의 마음. 어머니가 죽고 유일한 친구가 죽었지만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쳐 계속해서 재수생활을 해야 했던 상수의 마음. 연애는 제대로 해본 적 없지만 소설과 영화를 토대로, 무수한 연애고민을 같은 여자인 척 들어주며 그들을 살피고 또 염탐하던 상수의 마음. 이들의 사건은 비단 그만의 과거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우리가 겪은 굵직한 시대의 단면을 비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를 대하는 인물들의 마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혹은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대단한 지점이다. 경애와 상수의 어떤 부분은 분명히 나의 것과도 겹친다면, 이들의 마음 또한 나의 것이니 조금 부끄럽지만 계속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누군가의, 그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두려울 때. 살짝 돌아서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언뜻 내미는 경애의 손에 그녀의 마음이 있다. 그 마음 속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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