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리츠화재는 최근 보험사고를 당한 피보험자에게 “필요한 경우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서 “비용은 통상 손해배상금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가능하다”는 취지의 안내문자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보험사고와 관련하여 손해사정사가 보험회사와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합의금의 일정비율을 성공보수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손해사정사의 합의에 따른 성공보수 약정이 현행법상 가능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보험업법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불법행위입니다. 2018년 8월 22일 시행된 보험업법 제189조 제3항 제6호에 따라 손해사정사는 “보험금의 지급을 요건으로 합의서를 작성하거나 합의를 요구하는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법 제34조는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며, 같은 법 제109조는 이를 위반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현행 보험업법은 손해사정사가 합의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였을까요?

합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양 당사자의 양보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양보의 이면에는, 말하자면 서로 자신의 패(牌)와 상대방의 패(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판단이 전제되어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모든 책임을 질 것 같으니, 감당할만한 수준의 합의금을 주자” “실제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 알맞은 합의금을 받자” 등등 양 당사자가 자신의 패와 상대방의 패를 적절하게 판단하여 양보하는 것입니다.

결국 무조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어떠한 책임이 발생하는지, 그러한 책임에 누구의 과실을 어떻게 참작할 것인지, 그 손해는 어떻게 특정할 것인지 등등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법리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면밀한 법리적 검토가 선행되어야만 자신의 패와 상대방의 패를 파악하고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보험업법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법률전문가가 아닌 손해사정사가 합의와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전문가가 아닌 손해사정사가 합의에 따른 성공보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은 생명·손해보험협회, 보험대리점협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 위와 같은 불법행위의 근절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한편 고발조치를 통해 보험업법 및 변호사법을 위반한 손해사정사들에 대한 유죄판결(2016고단3641)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대한변협은 위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회적이고 한시적인 대응만으로는 같은 문제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2018년 5월 21일 89인의 변호사로 이루어진 ‘손해사정사대책특별위원회(이하 ‘손해사정특위’)’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해사정특위의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①제1소위원회(홍보), ②제2소위원회(고발), ③제3소위원회(제도연구)를 구성하여 변호사를 배치하였습니다.

제1소위원회는 손해사정사의 보험금 합의가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하며, 실제 위와 같은 합의과정에 변호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험업계 및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제2소위원회는 변호사법 및 보험업법에 위반하는 증거자료를 수집하여 고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제3소위원회는 특히 현재 손해사정업무와 관련하여 위법하게 이루어지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손해사정업무와 관련된 제도 전반을 연구하게 됩니다.

제가 속한 제1소위원회의 경우 2018년 8월 7일 대한병원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한국보험대리점협회에, 2018년 8월 10일 병원협회 소속 1133개원·각 협회 소속 보험사 38개소·대리점협회 소속 보험대리점 72개소(총 1243)에 불법행위 근절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향후 라디오 광고 등을 통한 대국민 홍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이를 소송으로 다투는 것만 변호사가 할 것이 아니라, 계약법 및 불법행위법 등 날카로운 법리로 무장한 변호사들이 소송으로 나아가기 전 보험사고를 당한 피보험자를 위해 협상의 전문가로 나서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변협 손해사정특위는 변호사들이 날이 선 법리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보험사고에 관한 적절한 합의를 베어낼 수 있는 판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변호사가 보험사고를 당한 피보험자를 위해 보험회사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을 때 대한변협 손해사정특위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입니다. 아이러니(irony)한 이야기지만, 이제 막 출범한 대한변협 손해사정특위가 하루라도 빨리 도태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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