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고, 그로부터 몇해 뒤인 1993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 저의 첫 번째 해외여행입니다. 당시는 20대라서 장거리 기차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녀서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로 배낭여행에 매력을 느껴 인도와 네팔로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행에 관한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은 즐거운 시간보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입니다.

영국 도버에서 프랑스 칼레로 배를 타고 가는데 도착시간이 지연되어 한밤중이 되었고, 승객들은 모두 실어 온 자가용을 이용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항구에는 적막감만 흐를 때, 멀리 보이는 도시의 희미한 불빛만 의지해 기차역을 찾아 도로변을 걷고 있는 청년을 구해 준 낡은 차를 탄 프랑스 연인, 인도에서 네팔을 버스로 이틀에 걸쳐 이동할 때 18시간 동안 고장 난 차량 안에서 멀미로 고생 중인 동행과 밤을 지새우며 인내심을 시험하던 때, 캘커타에서 오염된 식수를 마시고 배탈이 나 일주일 동안 홀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누워있던 때..

갑자기 제 여행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위험과 실패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뇌에 가장 깊이 남는다는 점을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쓰라린 경험은 동일한 실패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각인되고, 위험을 극복한 경험은 마치 즐거운 추억처럼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들도 어렵지 않게 승소를 한 사건들보다 안타까운 사연에도 불구하고 패소를 한 사건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승소를 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패소한 사건의 경우 그 원인이 변호사로서의 능력이나 판단과 관계된 것이라고 느껴지면 더욱 아픈 경험으로 남게 됩니다.

언론 기사에 의하면 2015년 미국의학협회는 대부분 사람이 평생에 한번 이상 오진이나 뒤늦은 진단을 받으며, 전체 환자 사망의 약 10%가 오진 때문이라는 내용 등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련 분야 의사의 “의사들도 인간이다. 우리 모두처럼 의사도 인지오류를 범할 수 있다. 만약 심각한 진단을 받거나 약이 잘 듣지 않을 경우 다른 의사로부터 2차 소견을 받아보는 것이 아주 좋다. 다른 눈이 실수를 잡아 낸다”라는 의견을 인용하였습니다.

의사들이 오진으로 환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조인들 또한 다루는 업무의 특성상 타인의 삶과 때로는 사회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경험과 관점에만 의지하여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기 보다는 여러 원인들로 인해 윤리적·지적 판단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한계를 수용하고, 위험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관점을 수정·보완함으로써 진실과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신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의 사업가 John Shedd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A ship in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오늘도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떠나는 모든 변호사님들에게 소중한 경험과 기회들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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