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달걀주’를 잘 만들었다. 소주잔 두 개를 모아 쥐고 머리로 깨는 시늉을 하며 잔속에 든 술을 맥주잔에 흘려 넣었다. 고고할 줄 알았던 고위 법관의 소탈함에 술자리의 어색함은 금세 풀렸다. 주량도 엄청났다. 한 판사는 “일도 술자리도 사력을 다하는 분”이라 했다.

실무를 맡은 심의관들도 법원 내부에서 극찬을 받았다. 어떤 판사는 한 심의관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동료인데 경외감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심의관에겐 “칭찬에 인색한 어느 대법관이 ‘100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한 인재’라고 했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임 전 차장은 그런 그들도 못 미더워 ‘보고서 경쟁’을 시켰다. A가 작성한 문건을 B에게 주며 “A가 이것밖에 못하니 네가 다시 써보라”고 했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에서 ‘진짜 엘리트’라고 불렸던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더 눈에 잘 띄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경쟁했다.

그들이 쓴 보고서가 최근 세상에 드러났다. 법과 정의, 법관의 양심을 외치는 사람들이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 전략과 기획, 음모가 난무했다. 상고법원을 만들기 위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각오가 내비쳤다. 무엇보다 천부인권의 최후 보루인 재판을 도구로 쓰려고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문건이 사법부의 심장부에서 버젓이 만들어졌고 대법원장이 흐뭇하게 받아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을 4년 반이나 지근거리에 뒀다. 그만큼 그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단 얘기다. 문건에 적힌 일들이 실행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임 전 차장과 심의관들은 분명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려고’ 했을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거나, 능력이 모자라 못해내는 것을 ‘진짜 엘리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57년 전 한 독일인이 보여줬다.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되물었다. 500만 명의 유태인을 수용소로 보낸 그는 “월급을 받고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아렌트는 그가 ‘생각하지 않은 것’에 책임을 물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법부 엘리트들도 그들의 ‘일’이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극히 소소한 재판의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에 침 한번 뱉지 않고 교통신호 하나까지 지키려고 했을 그들은 긴 수사 끝에 처벌을 받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악은 평범하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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