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북한을 규율하는 법적 토대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기초하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후 남북한은 대결과 화해 국면을 반복하며 무력충돌이 발생하기도 하는 불안한 정전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 간에 체결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선언’)에서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합의를 도출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향후 구체적으로 평화협정 체결 협상이 진행되면 그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법적 쟁점과 과제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법적 측면에서의 선행연구는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하나의 과정 내지 방법으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평화협정 체결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정전협정이 체결된 한반도의 경우 평화협정이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체결 당사자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은 그 동안 남한이 정전협정의 독자적인 서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한의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 지위를 부인하여 왔다. 하지만 판문점선언을 통해 남한의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평화협정은 남북 당사자 사이에서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남북합의서에 해당한다. 그런데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만을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화조약에 해당하는 평화협정에 대해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한지 문제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조약 성격의 남북합의서에 대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의 규정은 헌법의 조약 관련 규정에 대한 입법 확인적 성격의 규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 근거한 국회 비준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남북한의 국가승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평화협정을 통해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는 것은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 위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 평화협정 체결이 묵시적인 국가승인의 효력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평화협정에는 남북한이 여전히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은 그 자체로 평화체제를 구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진정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존 연구를 보면 평화협정에 들어갈 주요 내용으로 전쟁종식의 선언, 국제규범과 기존 합의의 존중, 전쟁책임과 전쟁포로 문제, 군사부문의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문제, 상호 감시 및 검증 절차, 평화관리기구와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 협정위반에 대한 제재 등이 있다. 이중 북한의 남침에 따른 전쟁책임 문제를 포함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미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였고, 이 문제가 쟁점화 될 경우 평화협정 체결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려면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전쟁포로나 한국전쟁 이후 납북자 문제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되거나 평화협정 체제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으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키프로스 사이의 유엔 완충지대와 같이 유엔평화유지군이 남북 비무장지대 전체를 통합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비무장지대 규모를 현재보다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 가능하다고 본다. 주한미군은 1953년 휴전 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하여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주한미군이 당연히 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평화협정과 직접 관련이 없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평화협정의 당사국 내지 이행보장국으로 참여하게 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조중우호조약의 존속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한미연합사령부도 한미간 합의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직접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군사적 문제들은 평화협정을 통해 구축될 평화체제의 상황과 신뢰 수준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다. 다만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거쳐 구체적인 방안과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국내법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협정의 내용에 따라서는 현재의 북한 관련 국내법과 효력 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의 대북 관련 기본법은 국가보안법이고 남북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관해서만 예외적으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진정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할 경우에는 이와 같은 법적 구도의 변화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법적 쟁점과 과제들이 적지 않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하고 이글을 계기로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해 법조인들의 많은 관심과 연구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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