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질서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 수사에까지 이르게 된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민이 지금껏 사법부를 믿었던 것은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까운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완벽한 수사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지만, 판사의 판결만큼은 무결점에 가까울 것이라고 기꺼이 믿었다.

수사기관이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때도 대부분 법관들은 법대에 앉아 속세의 일에 초연한 듯 청백리처럼 처신을 했다. 일부 판사들이 크고 작은 법조 비리에 연루됐을 때도 개인의 일탈에 불과할 것이라고 넘기며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촌부부터 재벌총수까지 법 앞에서는 평등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사법부를 감싸고 있었기에 국민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어둠 속에 가려진 진실을 끄집어내 시시비비를 가리고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추상처럼 꾸짖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더 서글픈 것은 재판 거래와 관련된 의혹 모두가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기된 의혹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됐을 뿐이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보면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는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정권이 껄끄러워하는 정치적인 사건 판결에 앞장서서 개입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권의 편에 섰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통합을 방해했으며 재판을 두고 정권과의 거래를 위해 협상 카드 맞추기를 하면서 국민을 희생시켰다.

판사들 몇몇이 모여 꾸민 일이 아니라, 사법부 내에서도 최고 엘리트들만이 입성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이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게 더 충격적이다.

학창시절 수재로 불리며 줄곧 공부에만 몰두한 ‘백면서생’이라서, 아니면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라는 특권의식 때문일까. 이유가 어찌됐던 간에 이들의 머릿속에 국민의 권리 보장에 앞장서야 한다는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음에도 사법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 재판 거래 의혹에 연루된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줄줄이 기각시키면서 아직까지 제 식구 감싸기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환부를 도려내야만 새 살이 돋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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