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인도주의의 수도(Humanitarian Capital)인 제네바에서 근무하면서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국제기구 중 국제이주기구가 있다. 아직 우리 국민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제이주기구는 국제 이주 분야의 유서 깊은 국제기구 중 하나로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용하고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본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발생한 유럽 내 이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PIMME(Provisional Intergovernmental Committee for the Movement of Migrants from Europe)라는 이름으로 1951년 설립됐다. 당시에는 천만명이 넘는 유럽 내 이주민들의 이동과 재정착을 지원하는 지역적 차원의 조직이었으나, 세계화와 국제화의 흐름 속에 1989년 국제이주기구로 명칭을 변경하고 그 활동범위를 확대해왔다. 그 결과 1997년 회원국 59개국, 직원 1361명의 전 세계 1100여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21만불 예산 규모의 조직에서, 2018년 회원국 172개국, 직원 1만1000여명의 3500여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1800만불 규모의 명실상부한 국제 이주분야 선도 기관으로 성장했다.

국제이주기구는 규범적 논의보다는 현장 활동에 집중하는 유연하고, 신속하며, 효율적·효과적인 프로젝트 위주의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최근 이주에 관한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for Safe, Orderly and Regular Migration)와 같은 국제이주 분야의 거버넌스 수립 및 이행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국제이주기구의 역할 확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구테흐스(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금년 12월 이주 글로벌 컴팩트가 채택된 후 개별 유엔 회원국 차원에서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관련 유엔 기관간 일관성과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한 유엔 이주 네트워크(UN Migration Network)를 설립하고, 그 조정 및 사무국 역할을 국제이주기구가 수행하도록 결정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주가 국제사회의 중요 이슈 중 하나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현장활동을 통해 국제이주기구가 축적해 온 전문성과 경험을 인정한 결과이나, 국제이주기구에는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이주 네트워크의 구체 운영방식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국제이주기구가 제한된 예산하에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 인력, 예산상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회원국들은 국제이주기구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함과 동시에 기존 장점인 유연성, 현장중심성, 프로젝트 중심성을 계속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기존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지난 6월말 개최된 국제이주기구 사무총장 선거에서 포르투갈 정부가 지명한 안토니오 비토리노(Antonio Vitorino) 후보가 당선돼, 신임 사무총장은 국제이주기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 조직을 이끌 중요한 역할을 수임하게 됐다. 국제이주기구는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국제이주기구에 가입했고, 1999년 설립된 한국사무소는 국내 이주민 지원, 난민 재정착, 인도적 지원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인천 송도에 설립된 이민정책연구원(MRTC)은 국제이주기구와 협력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적 이주 문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제 국제이주기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이주기구가 현재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새로운 역할도 훌륭히 수행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