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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힘
김충희 변호사·부산회(법무법인 동래)  |  kch6017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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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호] 승인 2018.07.23  09: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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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의 거장이자 누벨바그 운동을 이끈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쉰 두 번째 작품인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영어 제목은 프랑스 원제와 같은 Faces, Places 이다. 영화는 제목이 드러낸 그대로 아녜스 바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작업하는 젊은 사진가 JR이 다녀간 장소들과 그곳에서 찍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감독, 익숙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이 영화는 다소 심심하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길지 않은 러닝타임이 끝난 후, 마음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경외로 충만해진다.

바르다는 저보다 서른 세 살이나 어린 젊은 사진가 JR과의 협업을 흔쾌히 제안하고, 충동적으로 결정한 장소들을 찾아가 사람들의 대형 사진을 찍는다. 손님이 줄고 있는 카페의 여직원, 공장에서 온종일 일하는 노동자들, 철거가 예정된 광산촌에 마지막으로 남은 주민.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녹아 있는 바로 그 장소의 벽에 사진을 붙여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갤러리로 만들어낸다. 커다란 이들의 사진을 화면이 잡을 때마다 묘한 감동과 애정이 살아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그렇게 그들의 인생을 찾아온 사람들을 맞는다. 영화는 내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스스로의, 혹은 다른 이들의 삶을 사랑하게 만든다.

또한 바르다는 잊지 않고 평범한, 그래서 숨겨진 사람들을 꼼꼼히 찾아내 기록한다. 항만 노동자들이 아닌 그들의 아내를 찍어 남편이 일할 수 있도록 평생을 헌신하면서도 뒤에 가려진 여성의 지표를 드러냈다. 평생 공장을 위해 일하고 퇴직하는 당일 만난 노동자의 사진을 찍으며 바르다는 “우연은 최고의 조력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갖고 살펴보는 그녀 덕분에 모든 인연과 이야기는 사라지는 대신 화면 속에서 살아난다. 이 영화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경외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마지막엔 살아있는 전설인 장 뤽 고다르 감독과의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누벨바그를 함께 이끈 바르다는 고다르와의 만남을 기다리지만, 그는 마치 놀리는 것처럼 암호 같은 단어들을 남기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실망해 눈물을 보이는 바르다에게 여행을 함께 해온 사랑스러운 사진가 JR은 그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건넨다. 그녀가 고다르를 떠올리게 한다며 투덜거려도 고집하던 선글라스를 벗어 그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 것이다. 점점 눈이 나빠져 흐릿한 시야로, 바르다는 JR이 기꺼이 보여준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위대한 인물을 만나는 대신 시종일관 선글라스 뒤에 표정을 감춘 발랄한 사진가의 맨얼굴로 이르게 하는 영화의 엔딩은 실망스럽기는커녕 딱 그다워 만족스러운 감상을 남기게 한다.

고령의 바르다는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남긴다. 그녀는 그것을 아쉬워하기보다 받아들인다. 영화 내내 그녀가 보여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에너지를 보면 평생 그렇게 살아온 그녀가 미련 없이 순간을 즐기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사람과 일에 지쳐, 나도 인생도 어딘가 내던지고 싶던 날 이 영화를 만났다. 보고 나오는 길, 마찬가지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소설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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