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존폐논란 가운데 한시법으로 제개정을 반복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은 기본적으로 절차법이다. 기본적인 틀은 신용위험평가를 통한 부실징후기업 판정, 주채권은행 주도의 공동관리절차, 금융채권자협의회의 구성 및 운영방법 등을 간단히 정리하는 정도이다. 이는 기촉법이 기본적으로 사적자치에 따른 워크아웃을 규율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체적인 내용에 대한 규율은 적절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위와 같은 기촉법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기촉법의 운용도 사적자치의 원리에 충실하여야 할 것이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필자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기촉법상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원회’)인데, 조정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이 2016년 3월 18일자로 제정·시행 중인 현 기촉법상 상당히 확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활발하게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현 기촉법상 조정위원회의 업무는 금융채권액 또는 협의회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이견 등 금융채권자 간의 자율적 협의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아니하는 이견의 조정, 반대채권자의 채권매수가액 밎 조건에 대한 조정 등이다(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제29조 제5항 및 동법 시행령 제14조 제3항). 문제는 실제로 채권자 간 상기 사항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더라도 조정위원회가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거나 채권자가 조정위원회의 권위를 신뢰하지 않아 바로 민사소송으로 가는 것이다.

필자가 업무를 하면서 담당하였던 사건에서 A은행은 채무자 B기업으로부터 재고자산 양도담보를 취득하였는데, 이후 C은행은 채무자 B기업으로부터 다시 위 재고자산에 대해 이중양도담보를 취득한 뒤 기업 B는 기촉법에 따른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한다. 워크아웃에서는 각 채권자의 채권을 담보 또는 무담보채권으로 분류한 뒤 이자율 조정, 변제기 유예 등 채무재조정을 한다. 문제는 위 과정에서 A은행의 담보채권과 C은행의 담보채권 중 양도담보 상당 가치 부분에 있어서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A은행은 자신의 선행 양도담보의 우위를 주장하였고, B은행은 자신의 양도담보가 후행이기는 하나 선행 양도담보 설정 시 목적물의 특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무효이므로 자신의 후행 양도담보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C은행은 위 워크아웃 절차에서 주채권은행으로서의 지위를 십분 활용, 채권금융기관 협의회 안건에 문제의 양도담보 가치를 자신의 담보채권으로 반영하였다.

이에 A은행은 반발, 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였으나 조정위원회가 판단을 거부하자 C은행을 상대로 양도담보권 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한다. 위 사건은 결국 소송에서 A은행의 일부 승소로 끝났는데 필자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해당 사건에 대한 평석이 아니라 위 소송에까지 이르게 된 경위이다.

A은행과 C은행은 각자의 양도담보권의 유효성을 주장하다가 합의를 보지 못하자 A은행이 위 문제를 놓고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였는데, 동 조정위원회에서는 ‘A은행이 해당기업과 체결한 양도담보계약의 효력 범위에 대한 당사자 간 합의 또는 이에 준하는 결론이 먼저 도출되어야 할 것인바, 현재와 같이 C은행과 A은행 간 동 계약의 효력 범위 등에 대한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가 조정절차에 착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면서 조정 자체를 거부하였다.

기본적으로 조정이란 당사자 간 자율적으로 합의에 실패할 경우에 제3자가 개입하여 조리를 바탕으로 실정에 맞게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이고, 기촉법이 워크아웃 절차상 발생한 분쟁과 관련하여 조정위원회를 설치한 이유는 워크아웃 관련 전문가로부터 이해당사자 간 자율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29조 제2항). 그런데 막상 동 조정위원회는 위 사안에서 이와 같은 사전적 분쟁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회피한 듯하다.

조정위원회를 통한 분쟁해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기는 채권금융기관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조정위원회를 통한 조정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워크아웃 관련 축적된 법원 판례가 거의 없어 조정위원회가 분쟁해결 사례를 만들어야 하는데 채권금융기관의 특성상 법원의 기속력 있는 판결 외의 다른 분쟁해결수단에 의한 조정사례를 근거로 의사결정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에 의한 분쟁의 해결은 원칙적인 분쟁해결 방법이기 때문에, 사적자치를 바탕으로 한 워크아웃 절차에서 조정위원회의 조정을 도외시하는 것은 워크아웃 제도와 어울리지 않음은 물론이고, 조정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한 기촉법의 기본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조정위원회 사무국에서 기업구조조정 관련 질의응답 사례를 모아 사례집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노력들이 축적되어 다양한 조정신청 사항에 대한 구속력 있는 답변으로 자리잡고 있는 점이다. 그 일례로 선수금환급보증(일명 ‘RG’)에 따른 구상채권의 기촉법상 신용공여에의 포함 여부나 기촉법상 신규 신용공여에 따른 채권의 우선 변제권(기촉법 제18조 제3항)의 의미, RG를 포함한 채권단 간 손익정산에서 조선업 구조조정 처리기준을 통한 RG구상채권 산정 기준 정립 등이 그러하다. 향후 조정위원회 앞 문의사례 및 답변 증가, 법원을 통한 분쟁해결 사례가 충분히 축적된다면 현재는 채권단 간 분쟁해결 시 적극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조정위원회의 역할 제고 및 기능 활성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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