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다이나믹한 한국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연이은 ‘미투’ 폭로, 한국 정부의 북한 김정은 위원장 방문 등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된 ‘미세먼지 연일 나쁨’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 소식들은 제가 한국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나중에 알게 된 것들입니다. 같은 기간 제가 보고 들었던 것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그들이 말하는 여러 외국어 그리고 따뜻한 날씨와 파란 하늘, 흰 구름, 바다였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주관의 해외 교환 연수에 참여하여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위치한 헤스켓 헨리(Hesketh Henry)라는 로펌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현재도 영국 연방의 일원인 국가입니다. 꾸준한 이민 정책을 통해 인구를 늘려왔고, 면적은 남한의 2배가 넘음에도 인구는 400만명 정도에 불과하며, 목축업, 농업 등 1차 산업이 발달한 국가입니다. 복지 제도는 선진국 이상의 수준이며 엄격한 환경 규제로 인해 깨끗한 자연환경까지 보장받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경제 성장을 하는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가족 중심적이고 여가를 중시하는 문화가 지배적입니다. 이는 고용법, 환경법, ACC(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 사고 보상 공사)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차이점이라고 생각됩니다.

헤스켓 헨리의 파트너들 및 아시아 담당팀과의 미팅으로 연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팀에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변호사가 된 분들이 계셨는데, 한국과 뉴질랜드 두곳 모두가 익숙한 이 분들 덕분에 뉴질랜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양국 간의 발전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까지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각 분야별 전문가를 모셔 설명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 되었습니다. 법체계 전반 및 법조 현황을 시작으로 금융, 부동산, 건설, 형사 등 각 분야를 배웠습니다. 개업변호사와 대형로펌의 변호사를 각각 만나서 둘의 차이를 아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 마오리 법을 배우고, 양 국가 간의 비즈니스 활성화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도 하며, 지역 변호사회에 방문하는 등 다양한 내용으로 연수를 진행했습니다.

현지 분들과의 교류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호스트 로펌이 주최한 칵테일 리셉션에서는 호주, 유럽, 미국 등 영어를 사용하는 타 영미법 국가에서의 경력이 있는 변호사분들, 남태평양에서 일하셨던 분, 조선족으로서 한국에서도 오래 일하다가 뉴질랜드에 와서 영어부터 배우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변호사까지 두루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호스트 로펌의 지도 변호사님 댁에 초대되어 그 가족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 분들을 통해 한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제가 당연하게 생각한 한국의 여러 모습을 외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법은 기본적으로는 보통법(common law) 체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마오리족 관련 제도들이 법제의 또 다른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해당 법이념들은 독립된 마오리 법원 운영, 환경법, 부동산법 등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땅과 연계하여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정신과 문화가 있고, 그 때문에 아직도 많은 마오리들이 영토를 영국에게 뺏긴 것에 대해 후대 마오리족이 단순히 금전적 배상이나 사회적 배려를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제상으로는 마오리 거주지나 마오리가 하는 사업 부분의 개발이나 부동산 구매 제한이 많아서,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엄격한 환경 보호에 관한 사항도 부동산, 건설, 투자와 관련한 법제도에 반영되어 해당 산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경제 논리나 단기적 성장에 밀려 환경 보호가 후순위가 된 탓에 날이 갈수록 공기, 물, 토지 오염이 심각해져 가는 한국이 참고할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ACC 제도(사인 간의 불법행위로 인한 상해 발생 시, 상대 측 사인이 아닌 ACC를 통해 치료비와 일실수입에 대해 보전 받음)를 통해 국민 모두가 생명 및 신체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 받고, 법정 휴가 보장 및 피고용자의 고용계약서 내용 숙지에 대한 고용자의 책임 부담 등을 규정한 고용법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점(고용주가 부담스러운 비용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음) 등은 한국에서도 더욱 보편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수를 통해 뉴질랜드의 법제도를 배운 것도 좋았지만, 기저에 있는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났던 분들을 통해 너무나 당연했던 한국이라는 사회와 그 곳에서의 제 삶에 대해 다르게 볼 수 있었던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해관계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곳이 아니었음에도, 로펌의 많은 분들이 환대하며 기꺼이 시간을 내 주신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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