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경북 청도군에 소재한 기숙고등학교로 전교생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타지역, 특히 경상남북도 출신이었고 어린 나이부터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된 것이다. 한적한 시골의 논 한가운데 학교 하나 덩그러니 외딴섬처럼 있던 그 학교를 찾은 이유는 다름 아닌 대학입시에서의 높은 진학률 때문이었다.

매년 졸업생 중 7~8할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합격하는 높은 진학률에 비해 학교생활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일반적인 학교수업을 하고,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의 이른바 야간자율학습시간에는 강당 1층에 만들어진 독서실에 전교생이 함께 모여 말 그대로 자율학습을 하는 식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논 밖에 없는 그 곳에서 학원이나 과외도 없이 진학률이 높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주변에 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겨워서라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휴대전화는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전화와 문자말고는 할 수 없었고, 그마저도 자율학습시간 중에 사용하다가 적발되면 1주일간 압수되어 사용금지였다. 교과서가 아닌 책을 보거나 편지를 쓰는 경우에도 압수였고, 노래는 들을 수 있었지만 외진 시골동네여서 라디오주파수가 잡히지 않으니 CD밖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자면 깨우는 건 당연했다. 행여나 수업이나 야자를 빼먹고 놀려고 하더라도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대구까지 가지 않는 이상 논두렁을 걷는 것이 전부였으니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셈이었다.

이처럼 외부와 단절된 환경과 학교선생님, 사감선생님의 철저한 통제 덕분에 공부의 효율이 높았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 생활이 너무 답답해서 호시탐탐 놀 궁리를 하며 졸업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렇게 답답해하던 그 시절이 요즘에는 오히려 그립기도 하다.

우리는 직업의 특성상 매일 전화, 문자, 메일 나아가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눈코 뜰새 없이 연락하는 것이 업무의 일환이다. 차분히 서면이라도 쓰려하면 걸려오는 전화와 문의에 야근, 주말근무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굳이 업무에 필요한 연락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가다 사무실에 들른 손님의 응대부터 여러 사회생활 모임들을 하며 늘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니, 이제는 오히려 소통이 넘쳐나는 느낌이다.

밀려있는 서면을 앞두고 전화응대와 상담만 하다가 하루가 지나갈 때면 차라리 적당한(?) 단절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직업을 떠나서도 오늘날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SNS를 통한 소통까지 늘어나 그야말로 과잉연결시대이다. 이처럼 넘쳐나는 연결과 소통에 이제는 비대면서비스, 언택트(Untact)가 트렌드라고 하니 나만 이렇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보다.

물론 불통(不通)보다는 소통(疏通)일 것이나,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맑은 하늘 아래 새우깡 하나 손에 들고 친구와 도란도란 논두렁을 걷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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