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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MB가 흔든 것
김유빈 채널A 기자  |  eub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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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승인 2018.04.09  09: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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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에서 벗어나 사회부에 갓 입문했을 때,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다. 사회부 기자들이 맞닥뜨리는 사건엔 크게 네 종류가 있다고. 작은 사람들의 작은 사건, 작은 사람들의 큰 사건, 큰 사람들의 작은 사건, 큰 사람들의 큰 사건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아이템을 선별하는 데에 있어, 이 기준은 나름대로의 척도가 됐다. 공식대로라면 일반인들의 주취폭행은 ‘작은 사람들의 작은 사건’으로, 평범한 이웃 주민의 엽기 살인행각은 ‘작은 사람의 큰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재벌 총수와 정치인들의 성추문은 ‘큰 사람의 작은 사건’에, 권력자들의 비리 고리가 게이트로 번지는 건 ‘큰 사람들의 큰 사건’에 해당된다.

선배는 ‘큰 사람들의 큰 사건’은 정권마다 한번 있을까 말까 하다고 했다. 접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거다. 하지만 터지는 순간 사회 여기저기가 흔들릴 거라고 했다. 조직과 구성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사고까지도 말이다.

내가 이를 처음 체감한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서다. 민간인이 대통령의 뒤에서 국정을 주무른 사실이 터지자 사회 여기저기가 일제히 흔들렸다. 노력하지 않아도 인맥 덕에 특혜를 받은 학생은 대학가를 흔들었고, 바른 말을 했다가 불합리하게 좌천당한 직원은 문체부를 흔들었다.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빨간 선이 그어진 예술인들은 문화예술계를 흔들었다. ‘관례’로 미화된 모든 것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광장을 흔들었다. 현직 대통령은 파면됐다.

1년 뒤 서초동은 또다시 전직 대통령을 맞았다. 11년 전부터 대통령을 둘러싸고 이뤄졌던 비리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다. 전직 대통령 측에 건너 간 뇌물 액수는 110억원에 이르렀고 친인척과 측근들은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사회가 또다시 흔들리겠거니 싶었다. 공식대로라면 작년에 준하는 무언가가 바뀌는 중이어야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명단에 전전직 대통령이 추가 된 것 말고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공소시효는 남아 있었지만 여론의 ‘관심시효’와 공직자들의 ‘경각시효’는 남아 있지 않았다. 터질 게 터졌다며 분노하던 여론은 얼마 뒤 광장을 흔드는 대신 TV채널을 돌렸을 뿐이었다. 뉴스조차 지겹다는 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소된다. 충격과 경각심보다는 자조 섞인 비난이 더 크다. 법정에서 볼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거다. 큰 사람을 둘러싼 큰 사건이 반드시 사회를 흔드는 건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소가 아무 것도 흔들지 못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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