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손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가을 바람이 민망한, 늦춰진 여름휴가는 닷새를 채우기 하루 전 인천공항에 멈춰섰다. 벌써 1년 5개월 전이다.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2016년 10월 흥신소 직원처럼 대통령의 ‘40년 지기’를 찾아 떠났다. “사람 찾으러 가는 취재는 진짜 오랜만이다.” ‘야마’ 잘 잡는 것으로 유명한 한 선배가 툭 던졌다. ‘미션’의 무게감이 전달됐다. ‘우리는 대통령 잡는 저격수인 건가?’ 추억은 늘 아련하다. 불편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시계를 되돌렸다. 적폐청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적폐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악연(惡緣)이 시작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러진 바로 그 시점 어디겠거니 짐작했다. 숨은 손가락도 스스로 무너진 정권 그 너머를 넌지시 가리켰다. 정치권에선 “노골적”이라고 했다.

검찰은 그럴 수 없었다. 새 정부에서 새롭게 임명된 그들이다. 또 그런 ‘의도’를 읽는 게 외려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검찰은 망원경 대신 현미경을 꺼내들었다. 새로운 문맥을 조감(鳥瞰)하며 자신들이 처한 ‘정치 좌표’를 찾지 않았다. 세밀한 범죄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믿고 있다.

수사가 한창 탄력을 받았을 때 한 검사에게 물었다. “정치적 해석이 많은 일인데 괴로우실 것 같습니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고요.” 답변은 이랬다. “이게 내 업보라면 업보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들여다보니 그냥 둘 수 없는 일인데….” 수사의 축이 바뀔 때 또 다른 검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답은 비슷했다. “국민적 의혹이 있지 않습니까.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2일 밤 구속 수감됐다. 아들과 딸들이 울며 그를 배웅했다. 아내는 차마 나오지 못했다. 다시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힌 그의 범죄혐의를 떠올렸다. 재판에서도 사실로 확정된다면 누굴 탓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불편하다. 연민 때문은 아니다. 시작할 때 느끼지 못한 찝찝함이다.

서재에 꽂혀 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 ‘운명’을 다시 꺼내 뒤적였다. 그는 검찰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특검으로 할지, 검찰에 맡길지를 고민했던 대목에서다.

‘검찰 수사로 갈 경우 수사를 제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수사가 대북송금과 관련된 절차적 위법 규명에 국한돼야 하는데, 그 보장이 없었다…혹시 있을지도 모를 정치자금이나 다른 개인 비리에 수사 초점을 맞출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1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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