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2년 초부터 케이블 TV를 끊고 5개 공중파 방송만 시청하며 살았다. 8살 첫째가 투니버스 등 케이블 만화 채널에 탐닉하는 취미가 못마땅해서였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교양의 사명감으로 케이블을 끊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들, 이를 두둔하는 처로부터 채널 선택권을 빼앗긴 힘없는 가장의 앙갚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케이블을 끊고 공중파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집이 무등산 아래 오지라서) 개별 안테나까지 설치한 끝에 잡혔다 안 잡혔다 하는 MBC까지 4~5개 공중파 방송을 시청해 왔지만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물론 종편 유명 드라마 시리즈 등 대화에 제대로 끼지 못하고, 유력 종편 뉴스를 시청하지 못한 불편이 있었지만 다른 대안을 통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8년 2월부터, 처와 자식들의 반기로 다시 100여개 채널의 케이블 TV를 시청하고 있다. 케이블이 재개된 요새, 필자는 이제 10살이 된 셋째와 연일 채널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뉴스와 바둑 방송을 보려는 필자와 ‘엉클 그랜파, 도라에몽, 마음의 소리’ 같은 만화를 보려는 막내의 신경전이다. 연일 패배하던 필자가 엊그제는 이겨, 대통령의 개헌 발의안에 관한 종편 뉴스를 막내와 함께 보았다. 만화 시청 기회를 빼앗긴 패자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패자가 금새 뉴스에 싫증을 내며 채널을 돌리려는 시도를 미리 봉쇄하기 위한 다양한 포석으로, 뉴스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명의 요지는 ‘국회가 개헌안을 내놓지 못하니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회를 줄 때 해야지,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말해 주었다.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본 국회의 책임방기와 무능에 관한 보도! 문득 2009년 7월 22일 국회의 난장(亂場)이 떠오른다. 이날 국회는 방송법 등 4법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위 날치기 법안에 따라 설립된 종편에서 역시 국회의 무능이 보도되고 있으니 묘한 교차감이 든다. 헌재(2009헌라8 등)의 사실확정을 보면, 2명의 의원이 의사당 밖에 있었음에도 투표한 것으로 표시되고, 4명의 의원이 옆자리 또는 멀리 원정하여 단수 또는 복수로 무권투표를 하였으며, 17명의 의원이 제 자리를 두고 타 동료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중 2명 의원은 동료 의원에 의해 끌려 나갔으며, 40명 의원들이 대부분 10여 차례 찬성과 반대를 번갈아 기표한 것으로 표시되는데, 그 중 백미는 무려 24회에 걸쳐 찬성과 반대의 변덕을 부린 의원도 있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난장판 무법천지에 대해 헌재의 법정의견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개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맞지만, 가결선포행위의 무효선언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 논거는 국회의 자율권이고, 위헌·위법 상태의 시정은 국회 스스로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모든 정당이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에 동의하였고, 그에 따라 2017년 2월부터 14개월 동안 활동한 국회 5당 참여 개헌특위는 아직 단 한건의 합의안을 내놓은 바 없다. 14개월 동안 헌법기관이 특위까지 구성해 놓고 분명한 시대정신, 정의감각 등을 알 수 있는 기본권 조항에서조차 합의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정당한 헌법 권한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횡포’로 규정하거나 ‘청부개헌’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헌법개정안은 국회의 특별결의를 거쳐 비로소 국민투표에 부의되므로, 국회가 그 표결 이전에 자신의 개헌안조차 내놓지 않고 그 대안인 대통령 개헌안을 부결한다면, 이는 헌법개정권력의 요구에 반하는 것이고 대의제도의 단점과 역기능을 자행하는 것이다. 대의제의 효용이 끝나는 곳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요청이 시작된다. 자율(自律)의 허용(許容)이 끝나는 곳에서 타율(他律)의 통제(統制)가 시작된다. 차제에 개헌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國民召喚制)가 도입되었으면 한다. 필자는 대의제의 효용을 믿고 지지하지만, 대의제를 남용하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통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국민소환제야말로 국회의 횡포와 무능에 대한 적절한 견제장치가 될 것이다. 막내딸에게 말했던 바, ‘기회를 줄 때 해야지, 그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경고를 국회에 속삭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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