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재판에서 악의 본성을 찾고 있다고 말했었죠? 찾은 것 같습니다. 동정심의 부재. 그것이 모든 피고인들이 가진 특성 중 하나입니다. 타인을 느끼는 능력이 없는 것. 악이란… 동정심이 없는 것입니다.”

1946년 가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스 독일의 전쟁지도자에 대한 국제군사재판(뉘른베르크 재판)’ 재판부 조사관 ‘구스타프 길버트’ 미군 대위는 연합군 측 수석검사였던 ‘로버트 잭슨(당시 미국 대법원 판사)’에게 악(惡)의 실체를 이렇게 정의했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길버트 대위가 ‘뉘른베르크 재판’에 투입된 명목상 이유는 주요 피고인들의 자살방지였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과 같은 잔혹범죄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형사정책적 연구가 사실상 핵심 임무였다. 길버트 대위 또한 유태인이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인류 역사상 첫 전범 재판이다. 형사법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의학이나 형사정책학 면에서도 더 없는 연구기회였다. 연합군 측은 승전 후 공군 총사령관(제국 원수) 헤르만 빌헬름 괴링 등 나치 전범 수뇌부 24명을 기소하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에서 재판관을 선발해 이들을 심판했다. 길버트 대위는 괴링은 물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부터 강제수용소 간수를 맡았던 병사들까지 나치 전범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했다. 그가 내린 ‘악의 정의’는 이 과정의 산물이다.

지금 우리는 ‘#미투운동’이라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야만으로 점철된 국정농단의 굴을 빠져나와 성숙된 국가와 사회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으로 생각된다. 결국 우리가 함께 감내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오직 분노의 배설을 위해 고의로 오조준한 화살들이 ‘응징’이라는 깃털을 달고 또 다른 우리 딸과 아내 가슴에 박히고 있다.

이들의 무책임한 난사는 인터넷과 SNS를 타고 삽시간에 수만, 수십만발이 돼 날뛰며 또 다른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매우 심각한 것은, 이 괴물이 당사자가 아닌 무고한 제3자를 집어 삼킨다는 것이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씨는 가족에 대한 허위정보 확산과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여론 공격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잔혹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이번 #미투운동을 거치면서 규모가 커지고 구체화 됐을 뿐이다.

#미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자들의 공통인자는 공격대상 선택의 기준이 ‘묻지마’식이라는 것이다. 성추행 의혹을 받는 자와 관련이 있기만 하면 아이든 어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리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길버트 대위가 나치 전범들에게서 봤던 ‘동정심의 부재’가 결국 우리사회에서도 만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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