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정적을 깨고 휴대폰이 울린다.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 결과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구속된 전직 대통령의 측근들이, 최근에는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측근들이 구속과 불구속의 기로에 섰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포털에서는 영장 청구 혹은 기각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구속 여론이 높았던 사람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 신상이 털리고 호된 비난을 받았다. 불구속이 무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법감정은 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장 삼성이란 자본 앞에 사법정의가 사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강요에 의해 뇌물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피해자가 됐고 석방됐다. 이 부회장에게 입혀진 ‘피해자’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봤던 1심 판단은 뒤바뀌었다. 급기야 청와대에는 항소심 재판부 불신임 청원까지 올라왔다. 재판부는 법리에 따라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완벽히 설득하지는 못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기 바랐던 법감정을 읽지는 못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법감정’이 언급되기도 한다. 지난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혐의 재판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박 전 대통령 측 국선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장에 문제를 제기하며 ‘법감정’ 이야기를 했다. 검찰의 공소장이 공소사실과 무관하게 박 전 대통령의 타락한 도덕성과 무능함 등을 강조해 국민의 법감정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여론의 판세가 불리하다면 법감정은 법리적 판단에서 완전히 배격돼야 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혹자는 ‘법감정’이 한국 사회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법 위에 법감정이 있다”고도 한다. 법과 법감정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법적 판단이 공감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법부 판단과 국민 법감정의 간극이 큰 이유는 지금의 법이 국민이 요구하는 정의와 상식의 수준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데 있다. 법을 개정해서 해결될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공감할 수 없는 법은 결국 신뢰와 권위를 잃는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게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사법부의 판단은 국민 법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법정 최고형이 선고됐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판결에 우리 사회의 법감정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느꼈다. 판결문을 읽던 이성호 부장판사는 피해자 가족이 겪은 고통을 언급하며 몇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말했다.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어떤 응징이나 처벌로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공감과 위로를 포함해 형을 정했다”고. 법감정이 반영된 판결의 울림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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