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재판에 출석하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명호 전 국가정보원 국익정보국장이 구속된 직후였기 때문에 핵심 질문은 ‘비선 보고’가 있었는지였다. 늘 까칠한 모습을 보이던 우 전 수석이기에 답변에 대해 속으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비선 보고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미소를 보낸 것이다. 심지어 마이크를 들고 있던 나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맨날 같은 질문 하느라 고생하시네.”

검찰에 처음 출석할 때 취재진에게 레이저 눈빛을 쏘던 우 전 수석이기 때문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포토라인에 서는 게 익숙해졌다고 해도 그의 변화는 뜻밖이었다. 게다가 이른바 ‘궁디팡팡’을 해주고 법정으로 향하니 순간적으로 멍해지기도 했다.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기자 입장에서는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표현을 바꾸고 우회적으로 물을 순 있겠지만, 대부분 기자들이 생각하는 핵심은 비슷하다. 그런데 이 날은 의미 있는 답변이 나온 것보다 우 전 수석의 변화에 관심이 쏠렸다. 법조 기자들 사이에서는 우 전 수석의 미묘한 변화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심경 변화, 간접적 혐의 부인, 여유 등의 의견이 나왔지만 우 전 수석에게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한달 뒤 그가 구속됐기 때문이다.

“서초동 순환버스가 있다면, 우병우는 VIP”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지난 2016년부터 우 전 수석은 검찰과 법원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공교롭게도 순환버스 대신 호송차를 타게 되면서, 더는 포토라인에 서기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법정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는 편이다.

우 전 수석은 재판 도중 재판장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내 카리스마 서열 상위권인 이영훈 부장판사가 “액션을 나타내지 마라”며 주의를 준 것인데, 이때 우 전 수석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랐다. 상황은 이렇다. 증인의 발언에 대해 우 전 수석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재판장이 이를 제지한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우 전 수석의 법정 밖 액션들이 스쳐 지나갔다. 취재진을 노려보고, 팔짱을 낀 채 조사를 받은 그의 액션 하나하나는 언론의 수많은 뭇매를 맞았다.

우 전 수석 재판은 이제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우 전 수석의 태도 변화, 대쪽 같은 재판장, 그리고 입증하기 어렵다는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될지까지 이틀 뒤 선고 재판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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