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립 한센인권변호단 단장

법조언론인클럽 법조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법조언론인상은 그동안 개인에게 수여돼 왔으나, 이번에는 한센인권변호단이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상은 제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여러 변호사의 연대 활동인 변호단이 수상을 한 점이 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변호사들의 연대를 통한 공익활동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센인권변호단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센인 지원은 사실 대한변협의 활동입니다. 제가 2004년 변협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을 당시 위원회에 한센인 문제에 대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 한센인을 위한 지원활동을 하던 일본 변호단 대표가 저와 박찬운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을 방문하여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국에 한센인 정착촌 90여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변호단에서 소록도에만 한센인이 있는 줄 알고 광주 지역 민변의 협조를 받아 지원을 하다가, 전국적 지원을 위해 변협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변협 인권위원회에서 한센인 문제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일본 변호사들을 통해 변협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한센인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정작 일본에서 이에 관심을 갖고 지원 요청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원 필요성을 느껴 이를 변협 상임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했고, 전국적으로 변호사를 모집, 변호사 62명이 참여하여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변호단이 자국민도 아닌 우리나라 한센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일본 변호사제도 발전 과정을 보면, 변호사제도가 그냥 도입된 것이 아니라 명치유신 이후 국민의 저항, 운동 등을 통해 변호사제도가 확립됐습니다.

1920년경부터 자유법조단이 결성되고, 변호사들의 횡적 결합을 통해 농민,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변론지원해 왔습니다.

한센인 지원 활동을 하는 일본 변호사들은 약해운동(약으로 인한 피해자 지원 운동)도 해 왔습니다. 수은중독으로 발생하는 미나마타병 환자를 위한 소송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 변호단 단장을 맡은 변호사도 고등학생 때 변호사들이 미나마타 환자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 받아 법대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한센인을 격리하는 나예방법이 1996년까지 시행되었는데, 한센인 단체에서 법률적 어려움을 겪어 지방변호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일본 변호사들이 나예방법 폐지운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에서 변호단을 구성하여 인권침해 등 부당한 조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지원활동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일본 재야 역사학자가 변호단에게 소록도와 대만 낙생원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사례를 소개해주면서, 일본 한센인만을 지원하는 것은 자국 중심주의에 불과하니 보편적 인류애를 위해 소록도와 낙생원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일본 변호단이 이에 깊이 공감하여 우리나라 한센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활동을 하던 중 대한변협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것을 ‘편지 한장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은 전쟁피해자 지원, 과거사 문제 해결 등 외국 관련 공익지원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만도 약 200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 공익 변호사의 오랜 전통과 활동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과 자극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지원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오래 전 일이라 소멸시효가 문제되지는 않았나요.

당연히 소멸시효가 문제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송과 입법활동을 병행했는데, 한센인보상법이 제정되어 법에 따라 보상청구를 할 수 있게 돼 소멸시효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한센인보상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보상 대상자인지를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일제시대 당시 소록도에 강제 격리되어 한센병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는데, 공식적인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보상 대상자인지를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소록도 교회의 교적부, 학교 졸업생명부, 의사 소견서, 변호사 의견서 등으로 자격 인정을 요구했고, 결국 관철되었습니다.

변호사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이러한 입증자료를 수집했고, 590명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변호사들이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지원활동을 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나요.

한센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우리가 더 치유되고 힐링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한센인들은 자신들의 조건이 좋지 못함에도 새벽에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행복은 조건과 무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번에 화우공익재단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법과 인권에 관한 강의 교육을 활발히 실시하여, 공익활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더욱 많이 나오도록 할 예정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법과 인권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키워 주고 공익활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면 앞으로 공익활동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납세자소송, 예산감시활동 등이 이루어져 예산의 부당한 집행을 막는 공익활동도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공익 활동을 희망하는 후배 변호사님들에게 조언을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연수원을 나와 바로 변호사가 됐을 때 사건이 없어서 고생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니던 교회, 학원, 학교, 가정법률상담소 등에서 무료 변론활동도 하고 소개를 통해 고객이 형성돼 도움을 받으면서, 늘 부채의식을 가지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경제적 의미의 십일조처럼 재능과 시간 기부 측면에서도 십일조를 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근시안적인 시각을 버리고 오랫동안 변호사를 하겠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익활동에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투자한다면 좋은 인맥도 쌓고 큰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주요 약력

사법시험 23회, 연수원 13기
화우공익재단 이사장
숭실대학교 이사
전, 법무부 소년법개정위원회 위원
전,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 위원
전, 대검찰청 수사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위원 
전, 대한변안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