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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증인에겐 변호인이 없다
문현경 중앙일보 기자  |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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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호] 승인 2018.01.29  09: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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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해야 하는 고역(苦役)을 치르는 상황은 두 가지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면접장에 온 구직자이거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는 경우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 준다는 건 때로 신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땐 구연동화를, 조금 더 자라서는 웅변을 배웠고 커서는 방송기자가 되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말을 여러 사람이 듣는 것이 좋았던 건, 언제나 두 가지 전제가 든든히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첫째, 나는 준비된 말을 했다. 입을 열기 전 미리 정해진 대본이나 짜여진 연설문, 승인된 기사문이 있었다. 둘째, 듣는 사람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거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장과 법정에서 구직자와 증인으로 나와서 하는 말은 그렇지 않다. 의자까지 내어 주며 앉아서 하는 말인데도 편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말이라도 해야 해서 그렇고, 끝까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 그렇다. 생각해 본 적 없는 걸 묻더라도 그 자리에서라도 정리해서 말해야 한다. 더 말하고 싶어도 “네, 됐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로 잘리기도 한다. 물론 준비된 질문에 준비되지 않은 답을 하는 것이 면접과 증인신문의 본질이고, 물은 사람이 답변을 정리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청자가 주도하는 대화에 무방비로 놓인 화자는 그 자체로 압도돼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증인, 한도 끝도 없이 말하지 말고, 사건 관련된 부분만 집약적으로 답변을 하세요.”

“증인, 좀 간단하게 대답하세요. 방금 제 말 지금 간단하잖아요?”

얼마 전 방청했던 형사사건에서 재판장은 법적으로 조리있게 말하지 못하는 증인을 답답해했다. 증인은 사회복지사로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고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찾아주는 데 도가 튼 사람이겠으나 재판장이 원하는 것은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재판장이 증인의 말을 자르며 “아니! 증인! 제 질문 다시, 다시!”라고 했을 땐, 높은 법대에서 내려온 큰 소리에 증인이 움츠러든 것이 방청석에서도 보였다.

법의 무지는 용서되지 않는다는 법언도 있지만 그렇다고 리걸 마인드가 상식은 아니다. 증인은 비(非)법률전문가이면서 변호인 없이 홀로 법대에 선다는 점에서 때론 피고인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법원 밖을 나서면 전문가로, 권위자로 인정받는 사람들도 사면(四眠)이 재판부, 검사, 피고인과 변호인, 방청객으로 둘러싸인 의자에 앉으면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긴장을 해서…”라는 불필요한 사과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증인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고롭게 나온 사람이다. 법정이 증인에게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진실만을 말할 것’을 요구했다면, 법정 역시 증인을 그런 신성한 맹세를 한 사람으로 대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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