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I. 사실관계

피고인은 A회사와 B회사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었는데, B회사는 C저축은행에 대해 대출금채무를 지고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담보하기 위해 C저축은행에 A회사 명의로 29억 9000만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주었다. 검사는 피고인이 대표이사로서의 임무에 위배하여 C저축은행에 29억 9000만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A회사에 같은 액수 상당의 손해를 가하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배임)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과 항소심(서울고법 2013노3282)은 기존 판례의 입장에 따라 피고인의 약속어음 발행행위가 A회사에 대해 무효라 하더라도 발행 당시 위 약속어음이 유통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甲회사에 대하여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이 초래되었다는 이유로 유죄를 인정하였고 이에 피고인이 상고하였다.

 

II. 대법원의 판결요지

대법원은 종래의 입장을 변경하여 약속어음 발행이 무효일 뿐만 아니라 어음이 유통되지도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배임죄의 기수범이 아니라 배임미수죄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다수의견은 대표이사가 임무에 위배하여 회사 명의로 의무를 부담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 유효하고, 다만 상대방이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효력이 없으며, 실제 채무의 이행이 이루어졌다거나 회사가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게 되었다는 등의 사정이 없는 이상 배임죄의 기수에 이른 것은 아니고, 대표이사는 배임의 범의로 임무위배행위를 함으로써 실행에 착수한 것이므로 배임죄의 미수범이 된다. 약속어음발행을 한 행위도 마찬가지로 보아 약속어음 발행이 무효일 뿐만 아니라 그 어음이 유통되지도 않았다면 회사는 어음채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사에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다거나 실해 발생의 위험이 발생하였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배임미수죄로 처벌하여야 한다고 본다.

한편 별개의견은 배임죄는 위험범이 아니라 침해범으로 보아야 하므로 구성요건의 특수성과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여 임무에 위배한 행위가 본인에게 현실적인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경우에만 재산상 손해 요건이 충족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본다. 의무부담행위에 따라 채무가 발생하거나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게 되더라도 이는 손해 발생의 위험일 뿐 현실적인 손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므로 회사의 대표이사가 대표권을 남용하여 회사 명의의 약속어음을 발행한 경우에도 그 발행행위의 법률상 효력 유무나 그 약속어음이 제3자에게 유통되었는지 또는 유통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관계없이 회사가 그 어음채무나 그로 인해 부담하게 된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실제로 이행한 때에 기수가 성립한다고 본다.

 

Ⅲ. 평석

배임죄에서 ‘재산상의 손해발생 여부’는 기수와 미수를 구별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재산상 실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도 쉽게 기수범을 인정하여 왔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기수시기가 지나치게 앞당겨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의 해결책으로 미수범 규정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본 판결에서는 무효인 약속어음이 실제로 제3자에 유통되기 전까지는 재산상 손해의 구체적·현실적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미수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기수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보았다. 따라서 재산상 손해의 구체적·현실적인 위험만을 초래한 경우(무효인 의무부담행위, 약속어음발행)인 경우에는 배임미수죄가 성립함을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손해발생 여부를 고려하지 아니하고 일방적으로 배임죄의 기수범으로 기소하던 관행도 시정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는 본인을 위한 법률행위이나 실질적으로 임무위배행위인 경우 민사재판에서 반사회적인 법률행위에 해당한다는 등의 사유로 무효로 판단되어 민사상 법적 평가가 기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게 되는데, 민사재판이 오래 걸릴 경우 여전히 기수 여부가 불분명해질 우려가 있다. 또 손해발생의 위험을 판단하는 기준과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재산상 실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 대한 판단은 본인의 전 재산상태와의 관계에서 법률적 판단에 의하지 않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한다고 보아 대표권을 남용하여 무효가 되는 행위이므로 손해발생의 위험 자체가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해왔는데,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 행위와 배임미수죄가 성립되는 행위를 구분짓는 ‘손해발생의 위험’을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할지 불분명하다. 검사가 배임의 기수범으로 기소하였다 하더라도 법원에서 공소장변경없이 미수범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을 해왔던 사안들이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된다.

한편, 배임죄의 보호법익과 관련하여 다수의견은 기존의 대법원의 판결을 유지하여 위험범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는 손해를 법률적 관점에서 판단할 경우 배임죄의 성립범위가 부당하게 협소해진다는 문제의식에서 고안된 것으로 보이나, 문언의 가능한 의미한계를 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견으로, 신임관계 자체는 배임죄의 보호법익이 아니라 침해의 태양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배임죄의 보호법익은 전체로서의 재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전체로서의 재산에 대한 침해가능성이 없는 행위의 경우 보호범위에 속하지 아니하므로 배임죄가 부정될 것이며, 행위자가 재산에 대한 침해행위를 하였으나 실제 침해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 배임죄의 미수범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실제 손해의 발생을 입증하는 경우에만 배임죄의 기수범이 성립될 수 있게 되어 법률문언에 부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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