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둘째주 금요일 저녁. 한 변호사가 우리 메인뉴스에 출연했다. 최환 변호사였다. 영화 ‘1987’을 감명 깊게 본 터라 인터뷰가 귀에 붙었다. 영화와 실상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긴박했다. “윤상삼 기자가 검찰청 캡인데, 박스를 슬며시 준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말했어” 빨려들었다. 삼국지 연의를 읽은 뒤 정사를 보는 기분, 그것도 공명에게 직접 적벽가를 듣는 느낌과 같았다. “지금의 역사를 여는데 약간의 기여를 했다고…” 당시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최 검사장의 방송 마지막 얘기였다.

영화 속 실제 인물들의 근황이속속 전해지고 있다. 오연상 의사는 개인병원을 열었고, 김정남씨는 재야학자로, ‘민주화 배달부’ 교도관 한재동씨와 이부영 전 의원은 박종철 열사 추모제에 늘 얼굴을 비추곤 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무죄다” 한 마디를 위해 법정에서 실정법과 싸웠던 1세대 인권 변호사 조준희, 홍성우, 이돈명, 황인철 변호사도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 이돈명, 황인철 변호사의 기일도 1월이다. 서슬 퍼래 경직된 시절, 이들의 용감한 방어권 행사는 사법권을 언어로 현화하는 법관과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는 검사 앞에 발가벗겨진 청년들을 감싸주는 홑옷이 됐다.

공권력의 반대편에서 시민과 어깰 나란히 했던 그들 변호사엔 못 미쳐도 최 검사장처럼 시대에 맞섰던 검사와 판사도 적지 않다. 한 야당 대표의 부친은 부장판사 시절, 1971년 7대 대선에서 일어난 ‘개표조작 사건’의 피고인 윤동수 울산시장에게 실형을 선고해 사실상 부정선거임을 인정하며 정국을 흔들었고, 박정희 정권 퇴진을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부산대 학생의 구속적부심에서 석방 결정을 내렸다가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한 여당 초선 의원의 부친과 ‘오적’ 사건의 직권 보석을 허용했던 판사 등 권력의 시녀가 되길 거부한 숱한 법조인들은 당시 법관재임용 제도가 신설되며 법복을 억지로 벗어야 했다.

올해도 1987년처럼 연초부터 개헌논의와 권력기관 개혁 문제가 뜨겁다. 다른 한편에서는 ‘위민(爲民)’한다던 전직 대통령 등 위정자들의 위법으로 시끄럽다. 법조인 출신의 몇몇에겐 그 법을 악용한다 해서 ‘법꾸라지’라는 별명도 붙었다. 31년이 흐르는 동안 고문치사라는 야만과는 멀어졌지만 그렇다고 영화서 노래했던 ‘그 날’이 가까워진 것 같지는 않다. 다시금 법조인들이 정의롭고 존경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소신이 일으킨 작은 파동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말했던 수많은 ‘연희(배우 김태리 분)’에게 용기를 준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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