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변호사는 진실과 거짓됨 앞에서는 말을 아끼면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인생에 두 부류가 있듯이 변론에도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권세와 돈에 영합한 변론이요, 다른 하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직론하는 변론이다. 그런데 법정 실무에서 보면, 갈수록 우리 변호사들이 후자 보다는 전자를 택하는 것 같아 슬프다.

의뢰인에게 보이기 위한 장문의 서면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 위한 작위적 자료를 볼 때면, 내 마음이 무너진다. 법정에서 나는 화를 내보기도 하고, 법조 위상이 추락되었다고 외쳐 보기도 한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알아 듣겠지만, 의뢰인을 위한다는 구실로 얼굴색 하나 변치 않고 거짓되게 분쟁을 조장하는 변호사들을 볼 때면, 과연 무엇 때문에 변호사를 하는 것인지 만감이 교차한다.

요새 변호사 직역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그 위기의식이 우리 변호사들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대형을 추구하고, 전문화를 추구하고, 세계화를 추구함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닐 게다. 그러나 추구하는 목적은 누가 보아도 반듯하여야 할 것이다. 그간 국민이 외면하는 바람에 형사변론은 거의 국선화 되었는데, 원인은 변호사들이 너무 적폐적 변론을 하고 돈만 아는 바람에 형사변론 영역이 현저히 줄어들게 됐지 아니한가.

그런데 위와 같이 민사변론 영역에서도 잠재적 의뢰인인 국민에게 적폐적 변론을 하여 버린다면, 장차 민사변론 영역도 국선화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심각한 것은 법리는 법령과 판례에 명백하므로 주로 사실관계를 비틀어 승소하는 변호사를 유능하다고 본다니 참으로 우려된다. 예전에는 간단명료한 서면과 주요 증거 몇 가지를 제출하면 그대로 쉽게 결론 도출이 되었으나, 요사이는 요건사실이 아닌 복잡다기한 사실의 구성과 작위적 무차별적 증거제출로 온통 재판이 전쟁터 같이 되어 결론 도출이 어렵게 됨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 재판부의 혼동과 잘못된 채증이 겹쳐지면 엉뚱하게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 나오고 만다. 이에 국민 원성이 자자하다. 우리 법조인들이 정신을 차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변호사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수가 가지 않는 곳에 길이 더 많다는 것이다. 소형화, 일반화, 지역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변호사 활동이 광범위하게 가능하다. 추구하는 목적을 정반대로 돌려보기만 하면 된다. 전국 곳곳 특히 열악한 시골 지역에서 더 많이 우리 변호사들을 필요로 하고 있고, 정당한 대가를 선듯 지불하고 싶어 하는 국민이 더 많다.

변호사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회적 운명이라면, 다수 변호사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도전하여, 나만의 조촐하지만 아름답고 반듯한 꿈을 이루어 봄은 어떨까?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진리 만큼은 확연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