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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작가의 말
유중원 변호사  |  rjo12@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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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호] 승인 2018.01.22  09: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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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양한 일을 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은행원, 변호사, 대학교수, 사회 활동가,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 칼럼니스트, 사막 여행가(그러나 나는 여태 사막에 가본 적이 없고 언제 갈지 계획도 없으니), 작가, 아름다움의 절대적 본질을 탐색하는 탐미주의자, 독한 술을 좋아하는 지독한 술꾼 등등.

그러나 짧은 은행 경력 이후 본래의 직업은 변호사이다. 나는 30년간 국제거래와 금융 분야에서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나는 변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현상과 불평등, 사회적 악폐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에 대해 깊은 이해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적 관점을 가진 좌파이거나 진보주의자, 근본주의자, 도덕적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절대주의적 망상에 빠져 있지도 않다. 비록 페미니스트와 동성애자들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일생 동안 사상적 전향 혹은 개종을 경험한 일은 없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객관적 질서와 제도, 관습, 케케묵은 도덕률을 옹호한다. 그래서 포퓰리즘을 경멸하지만 낙태 찬성파이고 사형제도를 찬성한다.

그러나 이건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담론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다만 내가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누굴 위해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60세가 넘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2011년 처음 장편소설 ‘사하라’를, 그 몇년 후 단편소설집인 ‘이별’을 발표했으나 그 소설들은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진 일도 없었고 심지어 제대로 읽히지도 않았다. 나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는 다른 지면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대한변협신문 홈페이지와 법률신문 홈페이지에 원고료도 없이 꾸준히 호흡이 긴 (또는 지나치게 재미없는) 작품들인 중·단편 소설과 그들 소설의 주제를 확장하고 심화시키기 위해서 쓴 에세이 등 80여편을 발표했는데 누적 조회수가 20만건을 넘어섰다. 조회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변호사가 웬 소설을 그렇게? 그것도 국제거래 전문 변호사가 왜 리얼리티에 대한 네오리얼리즘적 또는 포스트리얼리즘적 소설을 써야만 했는가. 나의 내면에는 헤아릴 길이 없는 거대한 암흑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장편 소설 ‘사하라’에서 작가의 가장 중요한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규현과 이브라함, 그 외 인물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혹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인 ‘사하라’라는 작품 자체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그걸 파악하는 것은 독자들 각자의 몫 아니겠는가. 나는 해체주의적 독해를 하는 단 한 사람의 진정한 독자가 필요하다. 그 독자는 작품의 재창조를 통해 소설 속에 꽁꽁 묶여 있는 무언가를 해방시켜야 한다.

나는 소설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무언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척한다. 그러나 시대에 뒤쳐진 멜로드라마 같은 이야기여서 통찰력이 부족하고 지리멸렬하고 따분하다. 신은 죽었고 인간성은 훼손된 시대에 살면서 사회적 실체를 포착하지 못하고 여전히 철 지난 유행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컨대 내가 의도한 (문학적)메시지가 불분명하고 너무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서 수정을 거듭하면서도 정말 깊고 심오한 모티브와 찬란하게 빛나는 섬세한 질감을 느낄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나는 더 이상 고치게 되면 송두리째 망치게 된다는 우려가 생길 때까지, 나 자신이 우선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강석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현대음악의 선구자로 꼽히는 작곡가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끼는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안 든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인데, 여기는 이렇게 표현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우연히 다시 듣다 보면 모순이 많다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천재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내가 때때로 작품을 너무 빨리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작품들이 작업실에 있으면 계속해서 손을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냈던 작품들을 도로 가져오면 그 작품들을 다시 살펴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내가 거기에 무언가를 더 보탤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측면도 존재합니다.”

예술가는 창조를 위해서 화사첨족( 蛇添足)이 될 때까지 고치고 고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추한 모습에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리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고질적인 습관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생이란 얼마나 불가해한 것인가. 계속 글을 쓸 것, 고쳐 쓸 것. 언어들이 녹아서 엉켜 붙고 빛나게 할 것. 그리고 성숙미가 넘치는 여자를 열렬히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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