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만난 법관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모 판사는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는 곳이 사법부인데 국민이 법원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판사는 “사건을 맡은 판사가 사건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판사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맥락으로 “동료 법관의 판단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법조계 불문율”이라고 말한 판사도 있었다.

이런 생각이 일부 법관들의 것만은 아닌 듯했다. 지난해 말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적폐청산 수사의 주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잇달아 기각했다. 또 군 사이버사 댓글공작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기획실장이 신청한 구속적부심에서 법원은 두 사람을 풀어줬다. 이들은 사건을 지휘한 명령권자였기에 책임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 비판이 새어 나온 이유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건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이념에 어긋난다”며 법조계 불문율을 강조했다.

그러나 유감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판결은 존재한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가 출범했다. ‘박동운 간첩 조작 의혹 사건’, ‘아람회 사건’ 등 과거사위가 재심을 권고한 사건은 79건에 달한다. 이 중 75건이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재심은 재판이 잘못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 청구하는 것으로 법원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전제한다.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 박해전 씨는 수사관들의 가혹 행위로 허위자백했다고 폭로했으나 당시 재판부는 박 씨 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호소를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했다.

과거사 위원회는 2010년 활동을 종료했다. 2014년 12월 2기 과거사위 출범을 바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공포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2기 과거사위 출범은 까마득하다. 반면 1기 과거사위 출범 당시 꿈쩍도 안 하던 검찰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양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검찰권 남용 의혹을 바로잡겠다며 검찰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한 것이다.

이제는 검찰이 아니라 법원이 꿈쩍 않는다. 모 판사는 “잘못된 판결이 있으면 재심을 통해 바로잡으면 되지 과거사위까지 출범할 필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재심 청구는 청구 이유뿐 아니라 청구권자, 청구 시기와 방식 등 그 절차가 법률로써 엄격히 제한된다. 재심이 열릴 확률 또한 적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1기 과거사위를 발족했던 이영훈 대법원장의 말이다. 잘못을 가려내는 사법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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