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0일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의 1심 선고 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법조팀 기자로 발령받고 처음 방청한 선고 공판이었다.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한 뒤 김 전 사장은 법정 밖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곁에서 부축하던 그의 부인도 흐느꼈다. 김 전 사장은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 전 사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 전 사장이 재임 중 자산가치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를 인수해 5000억원 상당의 국고 손실을 끼쳤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 과정의 비리를 집중 수사한 뒤 김 전 사장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강 전 사장도 김 전 사장처럼 이미 1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강김 두 전 사장은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유무죄 문제에 앞서 따져야 할 게 있다. 수사 주체인 검찰과 수사재판과정을 보도한 언론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제27조 4항)을 제대로 지켰는지 여부다. 이는 이 사건 뿐 아니라 최순실씨 국정농단 스캔들에도,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한 적폐청산 수사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돌이켜보면 국내 언론이 내보낸 수많은 기사는 관행적으로 수사 당사자를 유죄로 단정하고 재판에 앞서 여론으로 단죄해왔다. 검찰은 익명의 관계자를 통해 피의자를 유죄처럼 보이게 할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2017년에도 주요 사건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상당수 언론은 영장전담 판사의 판단을 문제 삼았다. 일부 검찰 관계자는 마치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를 풀어주기라도 한 듯이 법원을 비판했다. “열명의 범죄자가 도망치는 것이 한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초를 겪는 것보다 더 낫다”는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의 명언은 통하지 않았다. 언론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낄 따름이다.

미국 연방검찰은 언론 보도를 통한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개인 권리를 조화시키고자 미디어 매뉴얼을 만들어 사건마다 적용한다. 특히 미국 검찰은 수사에 관한 보도발표문에 “피고인이 법정에서 유죄가 가려질 때까지 무죄로 추정돼야 한다”는 문구를 반드시 포함시킨다고 한다. 형사 사건을 전문 취재하는 미국 기자들 역시 ‘법조기자협회(Criminal Justice Journalists)’를 1997년 조직해 언론윤리규정을 만들고 취재를 둘러싼 각종 쟁점기법을 기자들에 교육하고 있다. 무고한 시민이 범죄자라는 굴레를 쓰고 삶을 망치지 않도록, 국내에도 실효성 있는 형사 사건 보도와 수사 공표 지침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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