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범죄 수사물의 단골 대사, ‘미란다 원칙’의 기원은 1963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성년자를 납치해 강간한 혐의로 체포된 에르네스토 미란다는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스스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꼼짝없이 유죄를 선고받게 될 위기에 처했던 그가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건 알빈 무어라는 국선 변호사를 만난 덕분이었다.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따라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술한 내용은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피의자의 헌법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 판결의 교훈은 요즘 우리 법정에서도 이슈다.

국정 농단의 중심에 서 있는 최순실은 자신의 재판에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며 수시로 진술을 거부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본인의 재판에 불출석하며 검찰의 방문조사도 거부했다. 불법 정치개입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은 재심사를 통해 풀려났다. 세 차례 영장 청구 끝에 구속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어김없이 구속적부심을 (기각되긴 했지만) 신청했다.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판사들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렸고, 검찰은 공개적으로 반박 자료를 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적폐 판사’를 해임시켜 달라, 국정농단 피고인을 구속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여기서 잠깐,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과 무죄 선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미란다의 최후는 어땠을까? 당시 판결이 수사의 장애물일 뿐이라는 원색적 비난이 잇따랐지만, 검찰은 미란다의 자백 외에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수집해 항소했다. 결국, 미란다는 징역 30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은 뒤 가석방됐고 낡은 술집에서 한 남성과 다투다 흉기에 찔려 생을 마감했다. 경찰은 미란다를 숨지게 한 남성을 체포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특검과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수차례 자신감을 드러냈다. 범죄혐의를 소명하기 위한 철저한 수사가 씨실이라면, 날실은 피고인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얻을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2017년 한해를 아우르는 코드는 적폐청산이었다. 해가 바뀌어도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날실과 씨실을 촘촘히 엮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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