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할 때 어떤 유형이 소위 좋은 사건일까? 쟁점이 사실관계의 존부를 다투는 것보다는 적용할 법리의 논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금융법 관련 사건이 그런 유형에 속할 것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이름 없는 변호사가 그런 사건을 수임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미리 공부라도 해둘 필요는 있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2000년도 2학기에 개설한 ‘전문분야 법학연구과정 제10기 금융거래법과정Ⅱ’를 수강하였다. 매주 월요일(그렇게 기억함) 오후 늦게 항공편으로 서울에 가서 야간에 3시간씩 2강좌의 강의를 듣고, 끝나면 심야고속버스로 광주에 돌아왔다. 저명한 대학교수님, 판사님, 변호사님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은 망외의 즐거움 자체였다. 서울이 집인 수강생들은 강의 후 함께 장소를 옮겨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기도 하였다는데, 나는 광주로 돌아오는 것에 급급하여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강의 주제는 크게 금융거래일반, 금융거래와 담보법·보증법, 신종금융거래, 인터넷금융거래 및 전자결제, 금융거래와 강제집행법·도산절차법 등으로 분류되고, 다시 각 주제별로 몇개의 강좌로 구성되었다. 과목 중 파생금융상품, 자산유동화, 인터넷뱅킹, 전자서명, 전자자금이체 등은 당시 매우 생소하였다. 사실 그런 분야는 강의를 듣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사건에 직접 관여해보아야 정확하고 충실한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그런 기회를 접해보지 못하니 장님 코끼리 만지기 같았다. 시간을 쪼개어 장거리를 결석하지 않고 다녀서 수료한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그 과정에는 10월 초 설악산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실시하는 블록세미나도 있었다. 그때 혼자 설악산 대청봉을 등반하는 기쁨도 누렸다.

강의를 들었더라도 때때로 전체를 주마간산 식으로 들쳐보는 복습의 필요성이 반드시 있다.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경험이 있다. 몇년 전 친구에게서 명예훼손을 청구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사건을 위임받아 소장을 작성하고 첫 기일에 나갔더니 재판장이 청구원인에서 사실과 판단을 구별하여 정리하라고 하였다. 당시는 저게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대한변협 특별연수로 수강하였던 언론관계소송 자료집을 살펴보니 그 부분에 관하여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까지 하였던 것을 발견하고 혼자 실소하였다. 강의는 열심히 들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자 까맣게 잊고 소장 작성할 때 이용을 전혀 못한 것이다. 강의 받았던 사실을 상기하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변호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결국 자신이 해보았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맴돌게 되니 그 지경이 될 수밖에.

위 과정을 수료한 것이 변협 전문분야로 금융법을 등록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이제 시작하였거나 시작하려는 청년변호사들에게 자신의 전문분야 몇개를 개척하라고 강력히 권유한다. 개척은 미리 공부해두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는 근자에 이르러 예전과 다르게 훨씬 많아졌다. 다만 그러한 환경이 거의 대부분 서울에 조성되어 있어 지방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에게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더라도 미래를 준비하는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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