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쓰는 칼과 살인자가 쓰는 칼은 각도만 다르다. 나는 사람 몸을 갈라내고 장기를 뜯어내고 혈관을 발라낸다.” 귀순 중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 북한 병사 오모씨의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의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적폐청산’을 기치로 한 현재 검찰의 서슬퍼런 칼날이 떠올랐다. 지난 9년간 보수 정권에 산적했던 수많은 ‘적폐’를 겨냥한 전방위 ‘사정’의 칼날.

검찰 수사는 외과수술에 비견된다. 소위 수사 잘하는 검사를 ‘칼잡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권이란 칼을 잡고, 범죄라는 환부를 기소를 통해 잘라낸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국방부 등 각종 부처들이 불법에 한 데 엮이고, 이명박·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그 불법의 정점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외과 집도의로 분한 서울중앙지검의 메스는 곳곳에 드러난 ‘적폐’를 정면으로 쳐낼 수밖에 없다. “불법을 발견하면 수사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검찰의 논리가 힘을 지니는 이유다.

그러나 외과수술에 후유증이 생기듯이 검찰의 수사에도 후유증은 남기 마련이다. 전방위로 펼쳐지는 사정 정국에서 후유증의 징후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시각 속에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댓글공장’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미스런 일도 연거푸 발생했다. ‘적폐청산’이란 대업 앞에 유족은 개인적 아픔으로 절규했다. 검찰 내부에선 과거의 적폐 검찰과 적폐를 수사하는 현 검찰, 현 검찰을 다시금 수술대에 올릴 미래의 검찰로 검찰 조직이 나눠지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토로도 나온다. 지금의 ‘적폐’ 수사의 공과에 상관없이 검찰 조직 구성원들의 공허함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외과 수술은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치료법이지만 침습적이란 부담이 있다. 훌륭한 의사가 무턱대고 메스를 들지 않는 이유다. 국정원 및 정부 부처에 설치된 각종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지난날 자신들의 잘못을 캐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모습은 흡사 외과의사의 메스 하나만을 믿고 모든 환자를 수술실로 보내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올바르다고 믿는 순간부터 인간은 무자비해진다’란 경고를 되뇔 필요는 없을까.

외과의사가 환부를 도려내는 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 누구라도 낡은 질서나 관행에 좌절하지 않도록, 국민 누구라도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바꿔나가겠다. 그것이 적폐청산”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적폐’ 수사를 하는 이유는 전 정부 전체를 역사적으로 도려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말했듯이 국민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되살리기 위해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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