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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피해자
김현일 헤럴드경제 기자  |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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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호] 승인 2017.11.20  1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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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신문방송학과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는 당시 한창 논란이 일던 한 방송 프로그램 영상을 틀어줬다. 게스트로 출연한 일반인은 방송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옷과 구두, 장신구를 늘어 놓으며 자신의 재력을 거리낌없이 과시했다. 명품 마니아로 소개된 그는 별다른 직업이 없지만 부모님의 용돈만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방송 직후 인터넷은 불이 났다. “보기 불편하다” “방송에서 말하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출연자의 사치스러움을 비난하는 악플이 몇 주간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다. 네티즌들은 금세 출연자의 신상을 털어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실어 날랐다. 이윽고 출연자의 발언이 일부 거짓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참다못한 해당 출연자는 “제작진이 써준 대본대로 말한 것”이라며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제작진은 강하게 부인했다. 제작진 역시 출연자에게 속아 피해를 봤다고 맞섰다. 결국 사태는 ‘거짓 방송’ ‘조작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교수는 질문을 던졌다. 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가 요지였다. 이윽고 내게 질문이 왔고, 나는 “스스로 섭외에 응해 다수가 볼 방송에서 거짓말을 한 출연자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는 넌지시 내게 ‘틀렸다’는 눈치를 보냈다. 제작진이 가진 권한과 책임을 고려할 때 비난이 전적으로 출연자에게만 쏟아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처음 설계하고 촬영과 편집, 연출에 이르기까지 전반의 과정이 모두 제작진의 영역이다. 출연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책임과 더불어 편집 과정에서도 거르지 못한 잘못이 제작진에 있다고 교수는 말했다.

결국 피해자는 출연자도, 제작진도 아니었다. 교수는 조작인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그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궁극적인 피해자라고 했다. ‘오답’을 말한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얼굴을 제대로 못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따금씩 ‘조작 냄새’가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이 대학시절의 문답이 생각이 나곤 한다.

서초동에 피의자로 불려나온 한 전직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큰 상처를 입었다”며 크게 안타까워 했다. 직원들의 희생에 찬사를 보내주지 않는다며 못내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 전 국정원장도 있었다. 수년간 벌어진 국정원의 공작으로 상처입은 이들과 업계에서 퇴출돼야 했던 이들의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 국회의원은 국정원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과거 수사방해의 ‘피해자’라며 당장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으름장을 놨다. ‘사적 복수’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작된 증거로 진상규명이 늦어진 탓에 몇년째 같은 수사를 봐야하는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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