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권력의 특징 하나는 국민국가의 전통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다.” 이는 1861년 통일 당시 혼란스럽던 이태리인의 정체성을 통일시켜야 했던 고민을 잘 말해준다. 19세기 유럽의 지배자들은 민족의 특수한 상징과 기억을 연구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반복했다. 역사가 홉스봄은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이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묶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공산주의가 몰락했던 1990년대 서구화를 추구했던 중유럽 국가들은 그들 역사에서 유럽적이고 민주적인 전통, 이민족에 맞서 기독교 유럽을 지켰던 기억을 재발견했다. 서구의 지원과 협력이 절실했던 러시아 역시 자유주의를 새로운 길로 택했다.

그러나 20여년 뒤 국가들은 또 다른 전통을 창조해야 했다. 특히 서구화와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한 국가일수록 보다 과격한 전통이 절실했는데, 이를 위해 역사와 기억의 왜곡마저 서슴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의 생존방식은 이를 잘 말해준다. 서구화에 실패한 러시아는 결국 2차 대전의 승리, 특히 나치를 물리친 기억으로부터 새로운 전통을 찾았다. 사회주의 실패로 인해 러시아 혁명은 더 이상 자랑스러운 기억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은 나치에게 일격을 가했고, 2차 대전의 전세를 뒤집었다. 이 기억은 ‘서구가 아닌 소련만이 나치를 물리쳤다’거나, ‘유럽이 나치의 힘으로 러시아를 제거하려 했다’는 식의 편협한 내러티브가 되었고, 푸틴은 자신의 반서구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신화로 만들었다.

푸틴 정부는 2차 대전을 위대한 애국전쟁으로 부르며, 2014년 ‘나치즘 부활 금지법’을 제정했다. 승리의 영광, 그리고 전쟁의 방어적 성격을 부정하거나, 스탈린의 전쟁범죄를 주장하는 것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 인해 2차 대전 직전 스탈린과 히틀러가 밀약을 맺어 나치가 개전 초기 서부 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독, 소 양국이 폴란드와 발트 3국을 비밀리에 나눠먹은 공모행위는 철저하게 금지어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사상 최악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은 히틀러를 제압한 구세주이자 소련을 근대화시킨 국부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스탈린의 인기와 자신의 인기가 겹친다는 사실을 잘 아는 푸틴은 언론과 정보기관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러시아의 반서구적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해체되는 전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인은 지난 100년간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 미국이 도덕적으로 가장 우월하고 완벽한 국가로서 세계의 지도자가 될 운명임을 믿어 왔다. 소위 미국 예외주의라 불리는 이 신념은 1970년대 베트남전 패배와 1980년대 달러화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협력과 다원주의를 주도하는 미국의 지도자상을 제시했고, 미국 예외주의는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출범은 이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다. 그는 대통령 당선 전부터 미국의 도덕적 우월성을 부정했는데, 이는 위험했다. 미국 예외주의를 대체할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잭슨민주주의와 2차 대전 참전 반대론에서 위험한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7대 대통령 잭슨은 미국이 부강해지는 것 자체가 도덕이라 믿었다. 미국적 가치를 세계에 전파하거나 타국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쓸모없다고 믿었고, 당시 미국 주류층이던 백인 남성들은 이에 환호했다. 이러한 고립주의적 성향은 1930년대 미국 우선(보호)주의로 이어졌는데, 1830년대 잭슨시대에 비해 보다 과격해졌다. 2차 대전 참전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나치즘에 대한 지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8월 버지니아 주의 백인 우월주의 폭력 사태는 이러한 역사적 기억이 어떻게 일그러져 재현되는지를 말해준다. 유색인종에게 테러를 가한 이들의 손에는 나치깃발이 쥐어져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비론적인 입장을 내놓았을 뿐, 인종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다.

나치에 맞서 싸운 나라 미국에서 스와스티카(卐) 깃발이 나부끼는 이 끔찍한 현상은 전통의 붕괴가 가져온 불길한 징조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백인들도 이제 유색인종에 대한 피해의식을 매개로 정치화된 것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정치화를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래서 더욱 미국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미국 예외주의가 미국 허무주의에 맞서 새로운 전통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윤상욱 주제네바대표부 인권참사관은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저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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