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전을 거듭하며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가 거스 히딩크 감독 선임 문제로 시끄럽다. 측근 입을 거쳐 다시 한국에 헌신할 수 있다는 히딩크 의중을 대한축구협회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팬이 들고일어났다. 실현 가능성 없는 얘기가 됐지만, 8개월 남은 월드컵에서 예고된 망신을 피하고자 그를 부르라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팬의 ‘히딩크 사랑’은 단순히 월드컵 성적에만 기인한 게 아니다. 현대가가 20년 넘게 회장직을 잡고 있는 축구협회는 ‘현대축구협회’라 불리며 인맥에 의한 인사 돌려막기·임원 비리 등 적폐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15년 전 히딩크는 학연·지연 등 한국 축구의 여러 적폐를 걷어내고 ‘4강 신화’를 썼다. 애창곡 ‘마이웨이’처럼 자기 길을 간 덕이다. 팬은 국내 축구의 기본 토양을 바꿔본 그에게 또 한번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만능치료사’는 아니겠지만 최순실씨조차 건들지 못했다는 축구협회 그늘에 놓이지 않을 거란 희망이다. 팬에게 히딩크는 눈치 보지 않고 적폐에 당당히 맞설 아이콘이다.

적폐, 법조계에서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단어다. 권력에 기대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자리에 연연한다는 ‘정치 검찰’ 논란은 해묵은 과제다. 적폐로 가득 찬 검찰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 들린다. 문재인 정부도 어김없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검·경찰 수사권 조정 등으로 검찰의 힘을 빼려 한다. 이 와중에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과 이제영 검사가 지난 2013년 검찰의 국정원 수사·재판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7일 구속됐다. 국민은 다시 검찰의 적폐를 말한다.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판사의 정치적 성향 등을 분석해 관리했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도 숙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재조사 요구를 거부했다. 논란은 줄지 않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조사 칼을 꺼내 들었다. 이미 의혹만으로 사법부는 공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재조사로 만약 블랙리스트가 실제 존재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거센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물론 검찰과 법원 지도부의 면밀한 적폐 청산 의지와 과감한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방인으로 건너와 잃을 게 없던 히딩크와 달리 명예와 조직을 중요시하는 법조계다. 검찰 내에선 ‘식구’를 피의자로 맞자 곤혹스러워했다. 변창훈 검사가 영장심사를 앞두고 세상을 등져 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그래도 수사 속도가 줄거나 적폐 청산을 멈추는 계기가 돼선 곤란하다. 오히려 적폐의 실체를 더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축구팬이 히딩크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적어도 법조계 적폐 청산을 위해 제 갈 길 가는 리더가 보고 싶다. 또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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