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절뚝거리며 걷던 나를 한 선배가 불러 세웠다. 선배는 “왜 다쳤냐”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운동하다 다쳤다”는 말이 나왔다. 아차, 싶었다. 사실 나는 운동하다 다친 게 아니라 길거리에서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친 거였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는데 거짓말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입 밖으로 달려 나갔다. 온종일 ‘왜 거짓말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 같은 ‘거짓말쟁이’는 법정에서도 자주 만난다. 한 증인은 검찰에서 A라고 한 진술을 법정에선 B라고 바꿨다. 검사가 조사 때 윽박질러서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재판장이 진술이 번복된 이유를 묻자 증인은 “헷갈렸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른 법정에선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청문회에서 했다 위증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을 만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다들 거짓말을 할까.

국정농단 사건을 맡은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피고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인다. 내게 불리한 사실(Fact)은 잊어버리고 만다.” 의심받는 상황에 부닥친 이는 심리적으로 잔뜩 움츠러든다. 불리한 사실은 잊어버리고, 유리한 사실은 과장한다. 충분히 기억할 법한 사실이 헷갈리기 시작하고,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선 ‘자기기만(Self Deception)’이라 부른다. 사실과 다르거나 진실이 아닌 것을 나도 모르게 믿어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남을 속이기 위해 나를 속이는 생존방법’이라는 논리로 자기기만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기만이 계속되면 자신을 객관적인 현실과 멀어지게 한다. 사실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헷갈려버린다.

법정에서 남을 속이기 위해 시작된 자기기만은 제 발목을 잡기도 한다. 거짓말을 한 증인은 위증죄로 처벌받곤 한다. 검찰 조사 때 했던 진술을 1심 법정에서 바꾸거나, 1심 법정에서 했던 말을 2심 법정에서 되돌리는 피고인의 태도는 재판장의 심증(心證)에 불리한 영향을 끼친다. 한 판사는 “법정에서 말을 이리저리 바꾸는 피고인을 보면 ‘괘씸죄’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던 드미트리는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고 ‘고통으로 정화되기 위해’ 시베리아로 떠난다. 소설에서 드미트리가 실제로 아버지를 죽였는지는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드미트리 자신에게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정말 없었는지,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속이지 않는 지였다. 법정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새겨둬야 할 마음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