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아이스크림이다.”

타사에서 단독 기사가 나온 뒤 안타까워하는 기자에게 부장급 선배가 한 말이다. 사건의 얼개는 파악했지만 세부 내용을 더 취재해 쓰겠다며 미루다가 물먹은 상황이었다(물먹다: 낙종을 뜻하는 기자들의 은어). 타사 보도 내용이 기자가 파악한 팩트보다 더 나아간 것이 거의 없어 타이밍을 놓쳤다는 아쉬움은 더 컸다.

이때 선배는 “취재된 내용을 빨리, 남들보다 먼저 쓰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이 녹아 사라져 단맛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취지로, 기자에게 조언한 것이다. 기자 생활을 하는 한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적기(適期)를 놓쳐 후회하는 건 일상 다반사다. 개인적으로 친구 간, 이성 간 다툼 후에 사과할 시기를 놓쳐 사람을 잃은 일도 있고, 게으름을 부리다 할 일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도 종종 있다. 사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뒤늦은 조치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생각해보면 인류가 세월의 흐름을 연(年)·월(月)·일(日)로 나누고 초(秒) 단위까지 쪼개 계량하고 시간(時間)이라는 개념을 만든 건 시한(時限)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우리네 생활은 수많은 시한에 둘러싸여 있다. 기자는 마감 시간까지 기사를 송고해야 하고, 제조업체들은 납기 내에 납품해야 하고, 수험생들은 시험 시간 내에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법조계도 예외는 아니다. 검찰이 피의자를 체포했을 때 48시간 내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구속시간이나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각종 서면들은 시한 내에 제출돼야 하고, 법원도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 내에 재판을 마쳐야 한다.

민·형사 모두 당사자들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될 수 있기에 더욱더 법조계의 시한은 의미가 있다.

지난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이 연장되자 “참담하고 비통하다”고 속내를 밝히며 재판을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으로 담담히 견뎌 왔다”면서 “검찰이 6개월 동안 수사하고 법원은 다시 6개월 동안 재판했는데 다시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구속 연장 결정을 내린 재판부를 원망하며 사실상 재판을 포기한 것으로 읽힌다.

박 전 대통령이 장기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 건 ‘자초위난’이라는 평이 많다. 실기(失期ㆍ失機)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속속 드러날 때 박 전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났다면, 탄핵되지 않았다면,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이나 조사에 응했다면, 구속은 면했을 수 있다. 가정의 수사는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이스크림은 녹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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