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어부인 그는 1967년 5월 연평도 해역에서 조기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피납되어 세달 가량 북한의 체제 선전과 교육을 받고, 북한 내 공장 및 명승지를 둘러보고 남한으로 귀환했다.

귀환 뒤 주변 사람들에게 “이북에 가서 쌀밥에 고기반찬 먹고 편하게 잘 있다가 왔다” “평양 극장과 김일성 종합대학교를 구경했는데 시설이 좋더라” “이북 어선은 속력이 빠르고 이남 배보다 훨씬 좋더라” 등으로 북한에서 보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는 영장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 감금된 상태로 모진 고문, 가혹행위를 당했다. 납북이 아니라 자진 월북했다고, 북한에서 교육받은 대로 주변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해 찬양·고무를 했다고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어찌나 심한 고문을 당했는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맞은 부위가 쑤시고 아프고 수십년이 지나 노인이 된 지금, 잊을 때도 되었건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억울해 눈물부터 흐른다.

현재 필자가 대리하고 있는 재심사건 피고인의 사연이다. 비슷한 사건이 너무나 많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전쟁 이후 납북된 어민은 3729명에 달하고 이 중 3272명이 귀환하여 그 중 1273명이 반공법으로 기소되어 950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납북어부들이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 구타, 고문 등을 견디지 못해 자진월북했다는 허위자백을 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9건의 사건이 접수되어 모두 진실규명결정을 받았고, 이에 근거하여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납북어부들은 고립된 섬마을이나 해안마을에 거주하여 대부분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자신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사회적 취약계층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한 대학생이나 정치인들과 달리 그들은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해 쉽게 수사기관의 먹이가 되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망가져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고,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자녀들까지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나 자신과 가족의 삶 전체에 미친 고통을 그대로 안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의 성과로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과 재심을 통해 극히 일부는 명예를 회복하고 배상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먼저 재심무죄판결을 받은 분들이 시민단체와 협동하여 다른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찾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우리 법상 재심의 문은 너무나 좁고 재심청구를 접수한 재판부는 사건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오판과 그로 인한 인권유린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개별적인 재심과 국가배상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피해실태를 조사하고 그들의 훼손된 명예와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런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이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2018년 상반기 중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재개를 통해 과거사 전반의 미해결 사건 접수 및 진실규명 조사 착수’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이 반드시 실현되어 납북어부들의 고통도 치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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