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법철학자이자 형법학자인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입문’은 이승만 독재의 말기인 1959년, ‘법철학’은 유신독재 체제의 극성기인 1975년, ‘법학의 정신’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초기인 1981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다(라드브루흐를 널리 소개한 것은 최종고 교수의 업적이다). 그야말로 법의 탈을 쓴 불법이 판을 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시기였다. 이처럼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시대에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한 사민주의자 라드브루흐의 사상은 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라드브루흐의 법사상이 지닌 풍부한 함의에 사로잡혔다.

라드브루흐 사상의 핵심은 “세계는 단 하나의 진리에 감금시키기에는 너무나 풍부하고 생생한 것”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신(新) 칸트주의자인 그는 존재에서 당위를 끌어낼 수 없다는 방법 이원론을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것은 자연법사상의 거부를 의미하지만, 묘하게도 그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고민을 포기한 적이 없다. 법의 이념은, 평등을 요구하는 정의, 법 내용의 개별화를 요구하는 합목적성, 정의와 합목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실정법의 효력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법적 안정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세 이념 사이에는 모순과 긴장이 발생한다. 라드브루흐는 부정의로운 실정법의 효력마저 무제한 주장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정의의 제1과제가 법적 안정성을 통하여 달성된다고 본 점에서 비판적 법실증주의의 계보에 서 있다. 법 내용의 주요 부분을 결정하는 합목적성에서는 개인가치, 단체가치, 작품(문화)가치 중 어느 것을 우위에 놓느냐에 따라 세계관 사이의 경쟁이 생기는데, 그 사이에 우열을 인정하지 않고 관용의 정신을 앞세우는 점에서 라드브루흐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가치상대주의를 추구한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설명만으로 세계의 모순과 복잡함을 예술적 직관으로 사유하며 법의 인간화를 추구한 그의 참모습을 다 전달하기는 어렵다.

나치 시대가 오자 라드브루흐는 대학에서 쫓겨나 바이마르 헌법이 뿌린 민주주의의 싹이 파괴되고 독일이 야만화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법실증주의는 나치의 법률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전락하고, 나치의 가치 외에 다른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치 패망 뒤 라드브루흐는 자신의 종전 사상을 뒤집는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논문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을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독일 법률가들을 지배하여 온 실증주의적 법사고인 “법률은 법률이다”라는 명제가, 군인들에게 적용된 “명령은 명령이다”라는 명제처럼, 법률가들을 자의적이고 범죄적인 내용을 가진 법률에 대하여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고 반성한다. 그 결과 여전히 내용이 정당하지 않고 합목적적이지 않은 법률이더라도 법적 안정성이 일단 우선한다고 보면서도, 정의에 대한 실정법의 모순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 정의의 핵심인 평등이 실정법 제정에서 의식적으로 거부되는 경우에 그 법률은 법이 아니라는, 유명한 라드브루흐 공식이 탄생한다. 이것은 이미 라드브루흐 자신의 전체 사상 속에 있던 것들이지만, 참담한 현실을 체험하며 비로소 그늘진 곳에 빛을 비추듯 강조점을 변경하게 된 것. 그래서 “법치국가는 매일매일의 빵과 마셔야 할 물, 숨 쉬어야 할 공기와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 최선의 특징은 바로 민주정치만이 법치국가를 확보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드브루흐, 최종고 역, 법철학)라는 결론이 더 아름답다.

라드브루흐를 다시 읽으며 그가 겪은 체험과 사상의 궤적이 지닌 보편성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된 역사를 겪었고, 심지어 그것이 법 집행 과정에서 교활한 형태로 되풀이될 수 있음을 얼마 전까지 아프게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입법뿐만 아니라 법 적용과 집행 과정에까지 확장하여 법과 불법의 경계를 가르는 라드브루흐 공식에 관한 성찰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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