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이 말은 영화 ‘곡성’에서 효진(김환희 분)의 대사로 유행어가 되어 많은 패러디를 낳았고, 때로 개그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뭣이 중헌디?”라는 이 대사는 지금 법률가들에게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 법조계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듯, 지난달 28일 열린 변호사대회의 주제는 ‘법치주의와 법조개혁’이었다.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법조계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최근 봇물처럼 법조개혁에 관한 목소리가 높은데, 그 와중에도 우리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핵심인가’하는 것을 늘 기억하며 되새겨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법치주의 수호가 변혁을 통하여 오히려 그 목표에서 멀어지는 일이 생겨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오히려 사법부가 법조계 외부의 영향력에 놓이게 되는 개악은 막아야 할 것이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특히 국회 개헌특위가 도입을 주장하는 ‘사법평의회’는 위원 16명 중 10명을 국회와 대통령이 선출하게 되어 사법부가 외부 정치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고 사법권의 독립, 법치주의 구현은 오히려 더 멀어질 것 같아 염려스럽다. 대법관 후보자를 사법평의회가 선출한 뒤 국회 동의와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면, 현재의 시스템보다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고, 국회와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충실히 하지 못할 염려가 있다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우리 사회는 중대한 현안이 생기면 그 해법에 관하여 좌우의 진영싸움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특정 재판에 관하여도 국민이 보수와 진보로 편가르기 되어 분열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이를 마구 싸잡아 비난하고 잘못된 재판인 것처럼 몰아가는 일이 종종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사법부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받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민주정치를 수립했지만 포퓰리즘으로 인하여 법치주의가 쇠퇴하였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외치면서도 왜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정의와 불의라는 기준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그 결론이 자신의 해석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비난하는 것일까.

역사에 있어 때로는 보수가, 때로는 진보가 주도권을 쥐고 나아가지만, 그 과정에서도 법률가가 늘 잊지 말아야 할 목표는 ‘법치주의 수호’이다.

법의 여신 ‘디케(Dike)’는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두건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눈을 가린 디케는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고려할 수 없고 눈을 가리었기 때문에 눈 대신 양쪽 귀를 활짝 열고 온 정신을 기울여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법조인은 법원, 검찰, 재야 중 어느 영역에 있든지 본질적으로 법치주의 수호라는 공동의 책무를 같이 짊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의 공동 과제인 법치주의 확립을 위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매일 감당하는 재판과, 수사, 변론을 통하여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외부의 영향력에 주눅들지 않는 ‘따뜻하고도 공정한 법치주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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