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소위 ‘대박 부자’를 만들어준다는 투자업체를 잠입 취재했다. 2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업체 관계자는 화이트보드에 숫자들을 끼적이며 “한 가상화폐에 1000만원을 투자하면 8개월 뒤 최소 1억 원으로 불어난다”고 홍보했다. 일반 가상화폐는 아니라고 직감했다. ‘금 도매업, 유럽 본사, 60만명 인프라….’ 단어들은 화려했지만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없었다.

또 다른 업체도 비슷했다. 업체 소개자인 ‘스폰서’를 밝히지 않으면 입장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카드 포인트를 20%씩 적립하는 멤버십 서비스라고 소개했지만 실체는 월 회비 가입자들을 끌어들이는 모집 다단계였다. “금융회사로 등록했느냐”는 질문에 “본사가 외국에 있다”는 애매한 답만 돌아왔다.

접근하기 힘든 불법 다단계 의심업체를 호기롭게 잠입했던 건 업체 일원인 A씨 덕이었다. A씨는 내게 “지금 하는 업무가 좀 의심스럽다”며 “이상한지 아닌지 직접 봐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A씨는 내심 ‘이 업체들은 문제가 없고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란 답을 원했던 것 같다. 이미 다른 불법 다단계로 수천만원 피해를 봤는데도 말이다.

A씨를 비롯해 불법 다단계 피해자들을 잇달아 만나면서 공통점을 찾았다. 알음알음으로 다단계를 접했고 지방 워크숍 같은 단합자리가 있으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다단계를 하나만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가족에게 거의 털어놓지 못한다.

가짜 금융거래그룹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린 피해자들도 홀로 속병을 앓았다. 어머니 명의의 아파트까지 팔아 투자했지만 몽땅 날리고, 빚더미 스트레스에 고막 한 쪽이 막히고….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고 함께 빚을 갚고 있다는 B씨는 운이 좋은 축이었다.

‘조희팔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었는데 왜 불법 다단계 사기는 계속되는 걸까. 감언이설로 꾀는 못된 사기꾼 때문에, 벼락부자의 꿈에 혹해 잘못 투자한 사람들의 오판 때문일까. ‘피해가 어느 정도 불어나야 불법인 게 확실해진다. 기다려보자’며 뒷짐 지는 관계기관 탓일까. 합법과 불법 사이를 가려줄 인프라가 부족해서인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말부터 어려운 ‘유사수신’이란 개념도 깊게 연구해야 한다. 희대의 어미돼지 분양사기로 기록된 ‘도나도나’ 사건의 핵심은 수임을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돼지 사육 투자를 금융업으로 볼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도나도나 사건의 피해자 C씨를 지난달 16일 서울고법 303호 법정에서 만났다. 파기환송심 선고를 방청하러 왔단다. 선고가 끝나고 요청한 인터뷰에서 그는 끝까지 신신당부했다. “옷은 꼭 가려주세요. 딸아이가 알면 큰일 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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