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지방검찰청의 피의자신문 과정에 변호인으로 참여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의뢰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기각되었고, 의뢰인에게 적용될 처벌 조항의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여 중한 형벌이 예상되지 않는 상황이었다(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지역 언론에 환경 관련 범죄로 보도된 것이 큰 영향을 끼친 듯 했다).

그런데도 담당 수사관은 죄질이 나쁜 범죄라며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항까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변호인인 나로서는 담당 수사관이 쓸데없는 데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조사가 약 9시간을 경과하여 조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시점에 담당 수사관과 검사는 뜬금없이 사건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변호인인 내게 양해를 구한 후, 담당 수사관은 의뢰인에게 변호인 선임료는 얼마이며, 누가 부담하기로 하였으며, 선임과정은 어떠하며, 왜 굳이 다른 지역의 변호사를 선임하였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의뢰인과 함께 앉아 있던 나는 갑자기 변호인에서 피의자처럼 조사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상당히 불쾌하였지만, 그렇다고 의뢰인이 옆에 있는 상황에서 검사와 수사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울컥하는 기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의뢰인과 함께 검사와 수사관에게 선임과정, 변호인 선임료 및 실제 선임료 지급을 누가 했는지 등을 차분히 설명하자, 담당 검사는 변호인 선임료와 실제 부담자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더 큰 범죄나 공범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질문을 한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말을 하였다. 담당 검사의 설명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럴만한 정황이 전혀 없었음에도 지나치게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조사를 끝마치고 검찰청을 나와 의뢰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뒤에도 공범처럼 조사받은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피의자가 검찰조사를 받을 때에는 변호인 선임료를 지출하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이 오히려 과잉수사를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실무상 피의사건과 상관없는 사건도 조사 하고 있는 검찰단계에서는) 변호인이 참여하여 수사기관을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변호인이 참여하지 않는 게 의뢰인에게는 더 좋은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변호인의 신문참여권은 검찰 단계에서는 유명무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등 온갖 잡다한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들락날락거렸다.

하지만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보다 그 증거능력이 상대적으로 쉽게 인정되고, 실제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내용은 기소 후 유·무죄의 판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변호사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한편,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도 그 증거능력이 쉽게 부인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건 진행의 기본적인 방향이 정해지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중요한 조사가 모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와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검찰청에서의 피의자신문은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매우 부담스럽고, 위축될 수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사를 받는 피의자 입장에서는 매우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물론 경찰서에서 이루어지는 피의자신문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검사의 피의자신문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한다면, 피의자가 어이없는 진술을 할 가능성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방지할 수 있으며, 피의자의 기본권 보호 및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과정에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었으나, 명문 규정이 없어 논란이 되었고, 수많은 논의를 거쳐 결국 2007년 6월 1일 개정된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에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과정에 대한 변호인의 참여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게 되었지 않은가?

이와 같이 검찰 (및 경찰) 수사과정상 피의자신문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무상 변호인의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방식으로 피의자신문절차가 운영되고, 이로 인하여 피의자와 변호인으로 하여금 변호인 참여를 재고하도록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수사과정에서의 변호인 참여제도는 당초 그 취지대로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성공한 제도가 되느냐, 실패한 제도가 되느냐는 결국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운영을 하면 그 제도는 실패한 제도가 될 것이다.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과정에 대한 변호인의 참여권 보장도 많은 논란 끝에 그 필요성이 인정돼 도입된 제도이고,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검사 등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거나, 변호인이 참여했다고 해서 과잉수사를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사건과는 상관없는 변호인 선임과정이나 수임료 등을 문제 삼을 듯한 취지로 신문을 하는 것은 변호인 참여제도를 잘못된 방향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피의자신문과정에 대한 변호인 참여제도가 지금까지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하여 앞으로도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에서 변호인 참여에 대하여 불편부당하지 않도록 임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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