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휴정기를 맞아 이태리 여행을 다녀왔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가 20대에 완성한 피에타를, 피렌체의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서는 그가 70대에 완성한 피에타(일명 피렌체의 피에타)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는 흥분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는 그동안 도록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명작을 감상하였다.

라파엘로가 그린 ‘보르고의 화재’라는 작품에 얽혀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미켈란젤로가 다른 이들에게는 비공개를 전제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인 천지창조를 그리던 중 그의 경쟁자였던 라파엘로가 우연히 천지창조에서의 생생한 근육묘사를 목도하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자신의 작품에서 화재 당시 아들에게 업혀 탈출하는 노인을 어색하게도 굉장한 근육의 소유자로 묘사하는 등 그림의 근육묘사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당대 화가들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에게 영향을 받아 최상의 완벽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나 그 이상과 달리 근육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기형적 자세, 불안정한 구도, 모호함의 강조라는 화풍으로 고정되었는데 이를 매너리즘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매너리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예술 창작이나 발상 측면에서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 표현 수단이 고정되고 상식적으로 고착된 경향을 총칭한다. 가령 일정한 기법이나 형식 따위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어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고 나와 있다(네이버 문학비평사전). 정신이 번뜩, 내 이야기인 것 같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시기가 2002년이었으니 16년째가 되었다. 개업을 하여 내 사무실을 운영한 것도 햇수로 6년째가 되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르네상스 이후의 매너리즘 시대의 화가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능숙함과 노련함은 얻었을지언정 그만큼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열정이나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진 것이 아닐까. 사건과 의뢰인을 대함에 있어 타성에 젖어 있지는 않은지, 새로운 발상을 하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사건의 결론을 단정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매너리즘을 반성하면서, 바티칸의 성당과 박물관을 관람할 때 만났던 가이드가 떠올랐다. 일한지 7년이 되었다는데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하여 오후 2시까지 무려 4시간 반 동안 무더위에도 단 한번의 지친표정이나 피곤한 모습이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작품설명을 하였는데, 얼마나 활기찬 목소리와 동작으로 작품해설에 열정을 담아내는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뒤이어 떠오른 얼굴은 (사)한국여성변호사회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선후배 여성변호사님들의 얼굴들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소년원 봉사활동, 아동학대피해자 조력업무, 판례연구 및 심포지엄 개최 등의 공익활동에 열성을 쏟아가면서 기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열정보다는 의무감으로 임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변호사로 첫발을 디딜 때나 여성변호사회 일을 사무총장으로 보조하게 되면서 마음먹었던 나의 열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며 매사에 첫 마음과 열정을 담아 보기로 불끈 주먹을 쥔다. 매너리즘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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