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원곡동에 개업을 해 수많은 외국인을 만났고 2012년부터 줄곧 선부동에 살았으면서도 고려인을 안지는 얼마 안 되었다. 처음 고려인 이야기를 접한 것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통해서였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구 소련에 의해 수십만의 고려인이 연해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는데 얼어 죽고 굶어죽은 것이 절반이요, 그들 중 상당수가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라니 이렇게나 기막힌 일이! 하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는 건 간단했다. 집에서 고작 3km 떨어진 곳에 버젓이 고려인이 있었던 것.

내가 사는 선부3동 끝자락에는 ‘땟골’이란 곳이 있다. 국내체류 고려인들 중 상당수가 모여 살고 있다. 한국말이 서툴러 정보공유가 어렵고 열악한 일자리밖에 구할 수 없는 이들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주거비용이 낮은 곳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한다.

고려인들은 강제이주로 수만리를 이동해야 했고 생존을 위해 현지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말이 서툴다(주로 러시아어를 구사한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서툰 한국말이 상징하는 강제이주로 인한 상흔을 보지 못한다. 그저 이들을 말 못하는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해방이후 한번도 ‘동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한 탓이다.

고려인들의 입국목적은 노동이주나 결혼이주가 아니다. 단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살고 싶어 대한민국을 찾는 것인데 정작 할아버지의 나라는 고려인을 모른다.

먼저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가 아니다. 재외동포법 시행령에서 동포의 범위를 3세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국적자’도 동포가 아니다. 외국국적 동포만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라 하더라도 러시아를 제외한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은 재외동포비자를 받을 수 없다. 정부지침으로 방문취업비자만 내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만 19세부터 만 25세가 될 때까지는 90일마다 한국을 떠나야 한다.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에도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재외동포비자에 대해 ‘단순노무 취업제한’을 두고 있는데 고려인들은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단순노무 외에 취업이 어려워 사실상 불법취업으로 내몰리게 된다.

어떻게든 생계를 꾸린다 하더라도 ‘자녀들에 대한 보육과 교육지원’은 전무하다. 가족 중 누군가 다치더라도 ‘의료보험과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간신히 주 7일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영주권’을 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정도면 굳이 대한민국을 찾을 이유가 없어 보일 정도다.

문제를 고치기 위해 고려인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하면, 항상 ‘형평성’ 시비가 따라다닌다. 고려인 동포만 특별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인들이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불법취업에 내몰리지 않으며 기본적인 보육 등 최소한의 사회적 부조를 받는 것이 과연 전체 동포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까? 오히려 ‘가장 약한 쇠사슬’인 고려인들을 위해 제대로 된 특별법이 만들어진다면 그동안 방치되어 온 ‘동포’의 법적지위를 바로잡는 대들보가 되지 않을까? 올해는 고려인이 강제이주를 당한지 80년이 되는 해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고려인문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변호사님들께서 고려인 특별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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