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록 물러나지만 검찰개혁과 법무부 탈검사화는 꼭 이뤄져야 합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6월 16일 이렇게 사퇴의 변을 남기고 물러났다. 안 후보자의 결정적인 하자는 ‘몰래 혼인신고’ 의혹이었다. 사귀던 여성의 동의 없이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가 혼인무효 소송을 당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은 “배우자였던 여성의 이혼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혼 대신 혼인무효 형식을 빌렸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자의 자상한 배려심이 의혹을 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달랐다. “나만의 이기심에 눈이 멀어 당시 사랑했던 사람과 그 가족에게 실로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형사처벌을 받는 위법행위를 시인하는 뉘앙스였다. 분위기는 바뀌었다.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아니라 범법행위를 했다면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합했다. 법무부는 법질서를 지키고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결국 안 후보자는 직무에 반하는 범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낙마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전에도 법무부 장관이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난 사례가 있었다. 역대 최단명 법무부 장관은 안동수였다.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지 43시간 만에 물러났다. 2001년 5월 23일이었다. 그 이유는 인사말 초고에서 충성 서약을 밝혔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을 위해 이 한목숨 다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마음속에 숨겼어야 할 이 각오는 우연히 세상에 드러났다. 여직원이 이 초고를 한 방송사 기자에게 ‘실수’로 팩스로 전송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의 성은도 잊지 않았다. “저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신 대통령님의 태산 같은 성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말 중 ‘가문의 영광’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가문의 영광’은 이듬해인 2002년부터 영화로 만들어져 2012년까지 5편의 시리즈로 나오는 인기를 누렸다. 1편은 520만명, 2편은 5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결국 안 장관은 법치 확립과 검찰 중립을 훼손하겠다는 신념을 보여 사퇴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다음으로 짧은 임기를 마친 법무부 장관은 박희태였다. 김영삼 정부 때 임명된 후 열흘 만에 물러났다. 딸의 이화여대 특례입학이 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이중 국적을 가졌다. 3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줄곧 한국에서 생활했다. 자신의 성적으로는 명문대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선택한 후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 동양화과에 정원외 입학했다. 불법은 아니었지만 편법이었다. 민심은 분노했다. 결국 박 장관은 딸의 이중국적과 특례입학을 이유로 1993년 3월 7일 사퇴했다.

법무부 장관은 청렴하고 유능해야 한다. 다만 사악해선 안 된다. 검찰 개혁을 우직하게 추진해야 한다. 집권세력의 홍보맨이나 충직한 예스맨은 안 된다. 검찰의 중립과 독립을 확보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질서와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도 기억 속에 남을 법무부 장관 한명쯤 가지고 싶다. 새 법무부 장관에게 작지만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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